와카츠키 분조
와카츠키 분조 (若槻 文三, 1866년 3월 28일 - 1949년 11월 20일)는 일본의 정치인, 외교관, 변호사이다. 다이쇼 시대와 쇼와 시대 초기에 걸쳐 활동했으며, 입헌민정당 총재를 역임했다. 총리대신을 두 차례 (1926년 1월 - 1927년 4월, 1931년 4월 - 1931년 12월) 지냈다. 시데하라 외교를 계승하여 협조 외교 노선을 견지했으나, 쇼와 공황과 만주사변 등 격동의 시기에 어려움을 겪었다.
생애
이와테현에서 태어나 도쿄제국대학 법학부를 졸업하고 대장성에 들어갔다. 이후 관료 생활을 거쳐 정계에 입문, 입헌정우회에서 활동하며 재무차관, 대장대신 등을 역임했다. 1926년 가토 다카아키 총리의 급서로 총리대신에 취임, 제1차 와카츠키 내각을 조직했다. 그러나 금융 공황의 여파로 사임하고, 1931년 재차 총리대신에 취임하여 제2차 와카츠키 내각을 이끌었으나 만주사변의 발발로 총사직했다.
정치적 입장
온건하고 합리적인 성격으로 알려져 있으며, 시데하라 기조 외무대신과 함께 협조 외교 노선을 추진했다. 그러나 국내적으로는 쇼와 공황의 심화, 국외적으로는 만주사변의 발발 등 시대적 상황에 따라 정치적 입지를 잃게 되었다.
주요 업적
- 금 해금 단행 (제1차 내각)
- 군축 협상 참여
- 국제 연맹과의 협력 강화
비판
- 쇼와 공황에 대한 미흡한 대처
- 만주사변 발발 후 강경 노선에 대한 유화적인 태도
관련 인물
- 시데하라 기주로
- 하마구치 오사치
- 다나카 기이치
참고 문헌
- (일본어 위키백과 '若槻礼次郎' 항목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