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시 카렐
알렉시 카렐 (Alexis Carrel, 1873년 6월 28일 ~ 1944년 11월 5일)은 프랑스의 외과 의사이자 생물학자이다. 그는 혈관 봉합 기술의 발전, 장기 이식에 대한 선구적인 실험, 그리고 조직 배양 연구에 기여했다. 이러한 의학 발전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1912년 노벨 생리학·의학상을 수상했다.
생애 및 경력
알렉시 카렐은 프랑스 리옹 근교의 생트푸아레리옹에서 태어나 리옹 대학교에서 의학을 공부했다. 초기에는 리옹에서 외과의사로 활동하며 혈관 봉합 기술을 개발했는데, 이는 당시 수술의 큰 난제 중 하나였던 혈관 봉합 후 혈전 형성을 줄이는 데 중요한 기여를 했다. 그는 바늘과 실을 사용하여 혈관을 정교하게 연결하는 기법을 고안했다.
1905년 미국으로 건너가 시카고 대학교를 거쳐 1906년부터 뉴욕에 있는 록펠러 의학 연구소(Rockefeller Institute for Medical Research, 현 록펠러 대학교)에서 연구를 계속했다. 록펠러 연구소에서 그는 개발한 혈관 봉합 기술을 바탕으로 동물에서의 장기 이식 실험을 수행했다. 신장, 심장 등 여러 장기를 이식하는 실험을 통해 장기 이식의 가능성을 제시했지만, 면역 거부 반응이라는 문제는 당시 해결할 수 없었다.
그는 또한 조직 배양 연구에도 몰두하여 생체 조직을 체외에서 장기간 생존시키고 배양하는 기술을 발전시켰다. 특히 닭 심장 조직을 수십 년간 배양했다고 알려진 그의 실험은 유명하지만, 나중에 그 방법론과 결과에 대한 논란이 제기되기도 했다.
노벨상
알렉시 카렐은 혈관 봉합 기술에 대한 연구와 혈관 및 장기 이식에 대한 선구적인 연구의 공로를 인정받아 1912년 노벨 생리학·의학상을 단독으로 수상했다. 그의 기술은 현대 혈관 수술의 기초를 마련했으며, 장기 이식 분야의 발전에 중요한 초석이 되었다.
말년 및 논란
1930년대 이후 그의 관심사는 순수 과학 연구에서 사회 철학적인 문제로 확장되었다. 1935년에 출판된 그의 저서 《미지의 인간》(L'Homme, cet inconnu)에서 그는 인간 사회와 개인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피력했는데, 여기에는 사회적 엘리트의 역할, 우생학적 관점(인간의 '열등한' 부분을 통제해야 한다는 주장), 그리고 인간 정신의 신비에 대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특히 그의 우생학 지지 견해와 제2차 세계 대전 중 나치 독일에 협력했던 프랑스 비시 정부 하에서 국립 인간 문제 연구 재단(Fondation Française pour l'Étude des Problèmes Humains)을 이끌며 우생학적 정책을 연구하고 제안했던 사실은 그의 과학적 업적과는 별개로 심각한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파리가 해방된 후 그는 협력자로 기소되었으나, 기소 절차가 진행되는 도중인 1944년에 사망했다.
유산
알렉시 카렐은 현대 외과, 특히 혈관 수술 및 장기 이식 분야에서 중요한 선구자로 평가받는다. 그의 혈관 봉합 기술은 오늘날에도 기본적인 수술 기법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그의 말년의 철학적, 사회적 견해, 특히 우생학 지지와 비시 정부와의 협력은 그의 과학적 업적과 더불어 그의 유산에 대한 평가를 복합적으로 만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