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토 기요마사
가토 기요마사 (加藤 清正, かとう きよまさ, 1562년 7월 25일 ~ 1611년 8월 4일)는 센고쿠 시대부터 에도 시대 초기의 무장, 다이묘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가신으로, 임진왜란 당시 조선 침략에 선봉으로 참여했다.
생애
오와리국 아마군 나카무라 (지금의 아이치현 나고야시 나카무라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가토 기요타다, 어머니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생모 오만도코로의 여동생이다. 어린 시절부터 히데요시를 섬기며 두각을 나타냈다.
히데요시의 천하통일 과정에서 시즈가타케 전투 등 여러 전투에 참여하여 공을 세웠으며, ‘시즈가타케 칠본창’ 중 한 명으로 이름을 떨쳤다. 히데요시 사후에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 협력하여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동군에 가담했다.
임진왜란
임진왜란 당시에는 선봉장으로 조선 침략에 앞장섰다. 함경도를 거쳐 두만강을 넘어 여진족의 영역까지 침략하기도 했다. 울산성 전투에서 명나라 군대에 포위되어 고전하기도 했으나, 결국 살아남았다.
전후
전쟁 이후에는 구마모토 번의 번주가 되어 영지를 다스렸다. 치수 사업과 농업 진흥에 힘썼으며, 구마모토 성을 축성하는 등 영지 발전에 기여했다. 독실한 불교 신자로 알려져 있으며, 호국불교를 장려했다.
사망
1611년, 니조 성에서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만난 후 갑작스럽게 사망했다. 이에야스에 의한 독살설이 제기되기도 했으나, 정확한 사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평가
가토 기요마사는 무용이 뛰어난 무장이었지만, 임진왜란 당시 조선 백성들에게 큰 고통을 안겨준 인물로 평가받는다. 반면, 일본에서는 영지를 발전시킨 명군으로 칭송받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