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 안드로포프
유리 블라디미로비치 안드로포프 (러시아어: Юрий Владимирович Андропов, 문화어: 유리 안드로뽀브; 1914년 6월 15일 – 1984년 2월 9일)는 소련의 정치인이자 소련 공산당의 서기장, 그리고 1982년부터 1984년 사망할 때까지 소련의 국가 원수였다. 그는 1967년부터 1982년까지 국가보안위원회(KGB) 위원장을 역임하며 약 15년 동안 소련 정보기관을 이끌었다.
생애 초기 및 경력 안드로포프는 러시아 제국 스타브로폴 지방에서 철도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콤소몰(공산 청년 동맹) 활동을 시작으로 정치 경력을 쌓기 시작했으며, 제2차 세계 대전 중에는 카렐리야-핀란드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에서 파르티잔 활동을 조직하기도 했다. 전후에는 공산당 내에서 승진하여 외교 분야로 이동했고, 헝가리 주재 소련 대사로 재직하며 1956년 헝가리 혁명 진압에 관여했다.
KGB 위원장 (1967-1982) 1967년, 안드로포프는 KGB 위원장에 임명되었다. 그는 KGB를 강화하고 정치적 반대 세력과 체제 비판자들을 억압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이 시기 동안 반체제 인사(dissident)들에 대한 감시와 탄압이 강화되었으며, 정신병원 강제 수용과 같은 수단이 동원되기도 했다. 동시에 그는 정보 수집 및 분석 역량을 강화하고 해외 공작을 확대하는 데에도 기여했다.
소련 지도자 (1982-1984) 1982년 11월 레오니트 브레즈네프가 사망한 후, 안드로포프는 소련 공산당 중앙위원회 총비서직에 올랐다. 그는 부패와 규율 해이를 척결하기 위한 강력한 캠페인을 즉각 시작했다. 노동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결근과 음주에 대한 단속을 강화했으며, 당과 정부 기관 내의 부정부패 관리들을 조사하고 처벌했다. 그는 경제 개혁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일부 실험적인 조치를 시도했으나, 보수적인 당 관료들의 저항과 자신의 짧은 재임 기간 때문에 큰 변화를 이루지는 못했다.
대외적으로는 냉전이 격화되던 시기에 지도자가 되었다. 미국과의 관계는 소원했고, 특히 1983년 대한항공 007편 격추 사건은 국제적인 긴장을 고조시켰다. 핵무기 감축 협상 등도 진전을 보지 못했다.
사망 및 유산 심각한 신장 질환을 앓고 있던 안드로포프는 총비서직을 맡은 지 불과 15개월 만인 1984년 2월 9일에 사망했다. 그의 짧은 재임 기간은 소련의 stagnation(침체) 시기에 이은 개혁 시도로 평가된다. 비록 그 자신이 대대적인 개혁을 완수하지는 못했지만, 그는 체제의 문제점을 공개적으로 인정하고 변화의 필요성을 제기함으로써 후계자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페레스트로이카와 글라스노스트를 추진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는 평가도 있다. 그의 통치는 소련 역사에서 체제 경직과 개혁 노력 사이의 과도기적 시점으로 간주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