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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커크 전투

폴커크 전투는 1298년 7월 22일, 스코틀랜드 폴커크 근처에서 잉글랜드 왕국의 에드워드 1세가 이끄는 군대와 스코틀랜드의 수호자 윌리엄 월리스가 이끄는 스코틀랜드 독립군 사이에 벌어진 전투이다. 제1차 스코틀랜드 독립 전쟁의 주요 전투 중 하나로, 잉글랜드의 결정적인 승리로 끝났다.

배경 1296년 잉글랜드의 에드워드 1세는 스코틀랜드를 침공하여 점령했다. 그러나 윌리엄 월리스와 앤드루 머리 등 스코틀랜드 지도자들의 지휘 아래 저항이 일어났고, 1297년 스털링 브리지 전투에서 스코틀랜드군이 잉글랜드군에 대승을 거두며 스코틀랜드 대부분의 영토를 되찾았다. 이에 격노한 에드워드 1세는 직접 대규모 군대를 이끌고 스코틀랜드 진압에 나섰다.

양측 전력

  • 잉글랜드군: 에드워드 1세가 직접 지휘했으며, 기사, 중장기병, 웨일스 장궁병(롱보우맨), 보병 등 약 15,000명 이상의 대규모 병력으로 구성되었다. 특히 장궁병은 전투의 승패를 가르는 핵심 전력이었다.
  • 스코틀랜드군: 윌리엄 월리스가 지휘했으며, 약 6,000명에서 8,000명 규모의 보병 중심 병력이었다. 이들은 실트론(Schiltron)이라는 밀집된 장창 방진을 주요 전술로 사용했으며, 소수의 기병 지원군이 있었다.

전투 경과 스코틀랜드군은 폴커크 근처의 늪지대를 등지고 네 개의 실트론 방진을 형성하여 잉글랜드군을 기다렸다. 잉글랜드군이 도착하자 성급한 일부 기병대가 스코틀랜드 방진을 향해 돌격했으나, 빽빽한 장창에 막혀 큰 피해를 입고 물러섰다.

하지만 에드워드 1세는 실트론의 약점을 간파했다. 그는 강력한 장궁병 부대를 전면에 배치하여 스코틀랜드 방진에 무자비한 화살 세례를 퍼붓도록 명령했다. 실트론은 기병의 충격에는 강했지만, 원거리에서 쏟아지는 화살 앞에서는 무력했다. 스코틀랜드 보병들은 방진을 유지한 채 엄청난 피해를 입었고, 대형이 점차 무너지기 시작했다.

방진이 혼란에 빠지자, 에드워드 1세는 잉글랜드 기병대와 보병대를 총공격시켜 잔여 스코틀랜드군을 격파했다. 스코틀랜드군은 지리멸렬하며 퇴각했고, 막대한 병력 손실을 입었다.

결과 및 영향 폴커크 전투는 스코틀랜드 독립군에게 심각한 패배를 안겨주었다. 윌리엄 월리스는 전투에서 살아남았으나, 이 패배로 인해 스코틀랜드 수호자 직에서 사임했다. 잉글랜드는 이 승리를 통해 스코틀랜드에 대한 지배력을 다시 강화할 수 있었다.

이 전투는 중세 전술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기병 중심의 전투에서 장궁병의 화력이 밀집 보병 방진을 효과적으로 무너뜨릴 수 있음을 보여주었으며, 이후 잉글랜드군의 전술에 큰 영향을 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