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르핀 카를세프니
토르핀 카를세프니(Thorfinn Karlsefni, 고대 노르드어: Þorfinnr Karlsefni Þórðarson, 아이슬란드어: Þorfinnur Karlsefni Þórðarson)는 11세기 초반에 빈란드(Vinland, 현재의 북미 지역)를 탐험하고 정착을 시도한 아이슬란드 출신의 탐험가이자 상인이다. 주로 《에이리크 붉은 자의 사가》와 《그린란드 사람의 사가》에 그의 탐험 이야기가 기록되어 전해진다.
생애
토르핀 카를세프니는 10세기 말 또는 11세기 초에 아이슬란드에서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그는 부유한 가문 출신으로, 상업 활동을 통해 상당한 재산을 축적했다. 그는 그린란드를 방문하던 중 레이프 에이릭손의 빈란드 탐험 소식을 듣고 빈란드 개척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빈란드 탐험
토르핀은 60명의 남성, 5명의 여성, 그리고 가축을 포함한 대규모 탐험대를 조직하여 빈란드로 향했다. 그들은 레이프 에이릭손이 발견했던 레이프스부디르(Leifsbúðir)를 기지로 삼아 탐험을 시작했다. 빈란드에서 토르핀과 그의 일행은 포도가 자라는 것을 발견하고, 목재와 모피 등 다양한 자원을 얻었다.
원주민과의 관계
토르핀과 그의 일행은 빈란드 원주민인 스크랠링(Skræling, 노르드인들이 북미 원주민을 부르던 명칭)과 접촉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물물교환을 통해 평화적인 관계를 유지했지만, 점차 갈등이 심화되어 전투가 벌어지기도 했다. 특히, 스크랠링들이 노르드인들의 황소를 보고 놀라 공격해 온 사건은 유명하다.
정착 실패와 귀환
토르핀은 빈란드에서 약 3년 동안 머물렀지만, 원주민과의 지속적인 갈등, 식량 부족, 그리고 겨울의 혹독한 추위 등으로 인해 정착에 어려움을 겪었다. 결국 토르핀은 빈란드 정착을 포기하고 아이슬란드로 귀환했다.
의미와 평가
토르핀 카를세프니의 빈란드 탐험은 유럽인들이 북미 대륙에 도달한 초기 사례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그의 탐험은 빈란드에 대한 지식을 유럽에 전파하는 데 기여했지만, 영구적인 정착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토르핀은 노르드인의 탐험 정신과 용기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인물로 기억되고 있다. 그는 빈란드에서 아들 스노리 토르핀손(Snorri Þorfinnsson)을 낳았는데, 스노리는 유럽인이 아메리카 대륙에서 낳은 최초의 아이로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