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크 카르티에
자크 카르티에(Jacques Cartier, 1491년 12월 31일 – 1557년 9월 1일)는 프랑스의 탐험가로, 북아메리카 탐험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는 프랑수아 1세의 의뢰를 받아 세 차례에 걸쳐 북아메리카 대륙을 탐험하며, 특히 오늘날의 캐나다 지역을 탐험하고 세인트로렌스 강을 탐사했다. 카르티에는 이 지역을 프랑스의 영토로 선포하고 '카나타(Kanata)'라는 단어를 '캐나다(Canada)'로 명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생애
카르티에는 프랑스 브르타뉴 생말로에서 태어났다. 그의 초기 생애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많지 않으나, 숙련된 항해사였다는 점은 분명하다. 1534년, 프랑수아 1세는 카르티에에게 새로운 항로를 찾고 금과 같은 귀중한 자원을 찾아 북아메리카로 항해할 것을 명령했다.
탐험
- 1차 탐험 (1534년): 카르티에는 뉴펀들랜드와 래브라도 해안을 탐험하고 세인트로렌스 만에 진입했다. 그는 가스페 반도에 십자가를 세워 프랑스의 영토임을 선언했다.
- 2차 탐험 (1535-1536년): 카르티에는 세인트로렌스 강을 거슬러 올라가 호첼라가(오늘날의 몬트리올)에 도착했다. 그는 겨울 동안 스커비병으로 고생했으며, 이로쿼이족에게서 얻은 지혜로 병을 치료했다.
- 3차 탐험 (1541-1542년): 카르티에는 샤를부아 지역에 식민지를 건설하려 시도했으나, 혹독한 겨울과 원주민과의 갈등으로 인해 실패했다. 그는 다이아몬드와 금이라고 믿었던 광물을 프랑스로 가져갔으나, 가짜임이 밝혀졌다.
유산
자크 카르티에는 캐나다 역사에서 중요한 인물로 기억된다. 그는 유럽인들에게 캐나다 지역을 알리고, 프랑스의 영향력을 확립하는 데 기여했다. 그의 탐험은 이후 프랑스의 북아메리카 식민지 건설의 기반이 되었다. 카르티에의 업적은 캐나다의 지리와 문화에 깊은 영향을 미쳤으며, 그의 이름은 여러 지명과 기념물에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