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사노 나가노리
아사노 나가노리 (浅野 長矩, 1667년 3월 14일 ~ 1701년 4월 21일)는 에도 시대 초기의 다이묘이다. 아코 번 (현재의 효고현 아코시)의 번주였다. 간에이 4년 (1667년)에 태어나 겐로쿠 14년 (1701년)에 사망했다.
생애
아사노 나가노리는 아사노 나가토모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겐로쿠 14년 (1701년) 3월 14일, 에도 성 안에서 열린 조정의 칙사 접대 행사 중, 기라 요시나카를 칼로 베는 사건을 일으켰다. 이로 인해 즉일 할복 명령을 받고 자결했다. 이 사건은 훗날 '아코 사건' 또는 '겐로쿠 아코 사건'으로 불리며, 47인의 로닌 (낭인)이 기라 요시나카에게 복수한 이야기로 유명해졌다.
사건의 배경과 영향
아사노 나가노리가 기라 요시나카를 공격한 배경에는 여러 설이 존재한다. 기라 요시나카가 아사노 나가노리에게 조정 칙사 접대 예법을 제대로 가르쳐주지 않았다는 설, 기라 요시나카가 아사노 나가노리를 모욕했다는 설 등이 있다. 정확한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이 사건은 에도 막부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켰으며, 무사도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강조하는 계기가 되었다.
평가
아사노 나가노리는 충의를 지킨 인물로 평가받기도 하지만, 공적인 자리에서 칼부림을 일으킨 점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시각도 존재한다. 그의 죽음과 그 이후의 47인의 로닌의 복수극은 연극, 소설, 영화 등 다양한 형태로 재해석되며 일본 대중문화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