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르데냐 왕국
사르데냐 왕국은 1720년부터 1861년까지 존재했던 유럽의 옛 나라이다. 이탈리아 반도 북서부의 피에몬테(Piedmont) 지역을 실질적인 중심지로 삼았으며, 지중해의 사르데냐 섬과 사보이(Savoy), 니차(Nice) 등을 영토로 포함했다. 공식 명칭은 '사르데냐 왕국'이었으나, 실제 정치적, 경제적, 군사적 중심은 본토의 피에몬테에 있었기 때문에 '사르데냐-피에몬테'(Sardinia-Piedmont) 또는 '피에몬테 왕국'으로 불리기도 했다.
사르데냐 섬 자체에는 13세기 후반부터 아라곤 왕국의 지배 하에 사르데냐 왕국이라는 명칭의 왕국이 존재했으나, 오늘날 주로 '사르데냐 왕국'이라 함은 1720년 수립된 사보이아 가문 통치의 왕국을 의미한다.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 이후, 사보이아 공작 비토리오 아메데오 2세는 1713년 위트레흐트 조약으로 시칠리아 왕국을 얻었으나, 1720년 헤이그 조약으로 시칠리아를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가문에 양도하고 사르데냐 섬을 대신 얻게 되었다. 이로써 사보이아 가문은 사르데냐 섬과 본토 영토(피에몬테, 사보이 등)를 통합하여 사르데냐 왕국을 수립했다.
초기 수도는 사르데냐 섬의 칼리아리였으나, 곧 본토의 토리노(Torino)가 실질적인 정치 중심지이자 수도 역할을 하게 되었다. 프랑스 혁명과 나폴레옹 전쟁 시기에는 프랑스에 의해 본토 영토를 대부분 점령당했으나, 1815년 빈 회의 이후 본토 영토를 회복하고 과거 제노바 공화국 지역까지 병합하며 세력을 키웠다.
1848년 혁명기에 국왕 카를로 알베르토는 자유주의적인 알베르토 헌법(Statuto Albertino)을 제정하여 입헌 군주국으로 전환했으며, 이는 훗날 이탈리아 왕국의 헌법이 되었다. 사르데냐 왕국은 19세기 중반 카밀로 카보우르 백작을 수상으로 삼아 이탈리아 통일 운동(리소르지멘토)의 핵심 국가로 부상했다. 오스트리아, 프랑스, 프로이센 등과의 외교와 전쟁을 통해 북부 및 중부 이탈리아 국가들을 병합했으며, 1860년에는 주세페 가리발디의 남부 이탈리아 정복 이후 국민 투표를 통해 양시칠리아 왕국과 통합했다.
1861년 3월 17일, 사르데냐 왕국의 국왕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가 이탈리아 왕국 수립을 선포하면서 사르데냐 왕국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사보이아 가문은 이후 이탈리아 왕국의 왕가로 계속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