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륙 봉쇄령
대륙 봉쇄령은 19세기 초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영국을 경제적으로 고립시키고 약화시키기 위해 시행한 대규모 통상 금지 정책이다. 프랑스의 지배하에 있거나 영향권에 있는 유럽 국가들이 영국과 일체의 무역을 할 수 없도록 금지했으며, 이는 나폴레옹 전쟁 기간 중 중요한 정책 중 하나였다.
배경
나폴레옹 전쟁 기간 동안 프랑스는 유럽 대륙에서 강력한 군사력을 자랑했지만, 영국은 해군력이 막강하여 프랑스의 영국 본토 침공 시도를 좌절시켰다 (예: 1805년 트라팔가르 해전). 영국을 직접적으로 군사적으로 굴복시키기 어렵다고 판단한 나폴레옹은 경제적 봉쇄를 통해 영국의 산업과 무역에 타격을 입혀 항복을 이끌어내는 전략을 선택했다.
시행
대륙 봉쇄령은 1806년 11월 베를린 칙령(Berlin Decree)을 통해 공식화되었다. 이 칙령은 영국 본토를 봉쇄 상태로 선언하고, 프랑스 및 동맹국들에게 영국과의 모든 통상 및 우편 연락을 금지했다. 1807년의 밀라노 칙령(Milan Decree)은 봉쇄를 더욱 강화하여, 영국 항구에 기항했거나 영국의 검문을 받은 중립국 선박도 나포 대상으로 삼았다. 이 정책은 프랑스 제국령뿐만 아니라 프로이센, 스페인, 오스트리아, 러시아 등 나폴레옹의 영향권 아래 놓인 여러 국가에 강요되었다.
영향 및 결과
대륙 봉쇄령은 영국 경제에 일시적인 타격을 주었지만, 영국은 새로운 시장(특히 아메리카)을 개척하고 광범위한 밀무역을 통해 이를 극복하려 했다. 또한, 영국의 산업 혁명은 봉쇄령으로 인한 대륙 시장 상실의 영향을 일부 상쇄하는 데 기여했다.
오히려 유럽 대륙 국가들은 설탕, 커피, 면화 등 영국을 통해 수입하던 식민지 물자와 원자재 부족으로 큰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다. 이는 일부 산업(예: 사탕무 재배를 통한 설탕 생산)의 발전을 촉진하기도 했으나, 전반적으로 경제 침체와 실업을 야기했다.
정치적으로는 프랑스에 대한 불만을 고조시켰고, 밀무역이 만연했다. 나폴레옹은 봉쇄령 준수를 강요하기 위해 군사적 압박을 가했으며, 포르투갈이 봉쇄령을 거부하자 이베리아 반도 전쟁(Peninsular War)의 한 원인이 되었다. 1812년 러시아가 봉쇄령 참여를 중단하고 영국과의 무역을 재개하자 나폴레옹은 러시아를 침공했는데, 이는 나폴레옹 제국의 몰락의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실패와 종결
대륙 봉쇄령은 광범위한 밀무역, 시행의 어려움, 그리고 봉쇄로 인한 유럽 대륙 국가들의 경제적 피해가 예상보다 컸다는 점 등 여러 요인으로 인해 나폴레옹이 의도한 효과를 충분히 거두지 못했다. 오히려 봉쇄령 강요는 동맹국 및 점령지의 반발을 불러왔고, 이는 나폴레옹 제국의 기반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1812년 러시아 원정의 실패 이후 유럽 국가들이 차례로 봉쇄령에서 이탈했으며, 나폴레옹의 퇴위 후 1814년 프랑스에서 공식적으로 폐지되면서 종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