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WIPIVERSE

🔍 현재 등록된 정보: 39,243건

자오저우만 조차지

자오저우만 조차지 (독일어: Kiautschou Bay concession, 중국어 간체: 胶州湾租借地, 병음: Jiāozhōuwān zūjièdì)는 1898년 독일 제국이 청나라로부터 99년간 조차(빌려 통치)한 중국 산둥성 자오저우만 지역을 일컫는다. 독일의 동아시아 진출 거점 마련을 위해 설치되었으며, 주요 도시는 현재의 칭다오(青岛)시였다.

역사

19세기 말 서구 열강의 중국 분할 경쟁 속에서 독일은 동아시아에 해군 기지와 무역항을 확보하고자 했다. 1897년, 산둥성에서 독일 선교사 2명이 살해당하는 사건(쥐예 사건)이 발생하자 독일은 이를 구실로 삼아 그해 11월 자오저우만 지역을 점령했다. 이듬해인 1898년 3월, 독일은 청나라와 정식으로 조차 조약을 체결하여 자오저우만과 그 주변 지역, 도서 등을 99년간 조차하고, 산둥성 내 철도 건설 및 광산 채굴 우선권을 얻었다.

독일은 조차지 수도 격인 칭다오를 현대적인 항만 도시이자 군사 기지로 집중적으로 개발했다. 잘 정비된 도시 계획에 따라 항만 시설, 철도(자오지 철도), 도로, 상하수도, 병원, 학교 등이 건설되었으며, 맥주 산업 등 공업도 육성되었다. 자오저우만 조차지는 독일의 동아시아 무역 및 군사 활동의 중요한 거점이 되었다.

제1차 세계 대전과 반환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일본은 영일 동맹을 명분으로 1914년 독일이 점유하고 있던 자오저우만 조차지를 공격하여 점령했다(칭다오 전투). 전쟁 후 체결된 1919년의 베르사유 조약에서 독일의 자오저우만 조차지 및 산둥성 내 이권이 일본에 이양되기로 결정되었다. 이는 중국 내에서 큰 반발을 불러일으켰고, 5.4 운동이 일어나는 계기가 되었다.

결국 1922년 워싱턴 회의에서 일본은 자오저우만 조차지를 중국에 반환하기로 합의했으며, 1922년 12월 10일부터 1923년 5월 1일까지 중국에 반환 절차가 이루어졌다. 제2차 세계 대전 중 일본이 다시 이 지역을 점령하기도 했으나, 일본 패망 후 중국에 완전히 복귀되었다.

의의

자오저우만 조차지는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서구 열강과 일본이 중국으로부터 강제로 획득한 대표적인 조차지 중 하나이다. 독일의 조차 기간 동안 칭다오가 근대적인 도시로 발전하는 기반이 마련되었으며, 제1차 세계 대전 이후에는 중국의 민족주의 운동 및 국제 외교 관계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