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헤미아 왕관령
보헤미아 왕관령(체코어: Země Koruny české, 독일어: Böhmische Kronländer)은 역사적으로 보헤미아 국왕과 관련된 왕령(王領) 영토 집합체를 일컫는 용어이다. 이 영토 집합체는 중세 후기부터 20세기 초까지 신성 로마 제국 및 이후 합스부르크 군주국(오스트리아 제국, 오스트리아-헝가리)의 일부로서 존재했다.
개요
보헤미아 왕관령은 단일 행정 구역이라기보다는 보헤미아 국왕이 통치하거나 주권을 가진 여러 영토들의 연합체 성격을 가졌다. 그 핵심 구성 요소는 다음과 같다.
- 보헤미아 왕국 (Králoství české, Königreich Böhmen)
- 모라바 변경백국 (Markrabství moravské, Markgrafschaft Mähren)
- 실롱스크 공국 (Vévodství slezské, Herzogtum Schlesien)
이외에도 상/하 루사티아 변경백국(Markrabství lužické, Markgraftum Lausitz)이 한때 보헤미아 왕관령에 속했으나, 이후 작센과 브란덴부르크 등에 넘어갔다. 실롱스크 또한 대부분의 영역이 프로이센에 할양된 후, 일부만이 합스부르크령 실롱스크(오스트리아령 실롱스크)로 남았다.
보헤미아 왕관령은 합스부르크 군주국 내에서 중요한 경제적, 문화적, 정치적 중심지였으며, 근대 체코 민족 의식 형성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각 왕관령은 자체적인 신분의회(Landtag/Zemský sněm)를 가졌으나, 점차 합스부르크 중앙 정부의 통제를 받게 되었다.
역사
보헤미아 왕관령의 개념은 14세기 룩셈부르크 왕조의 보헤미아 국왕 카를 4세(신성 로마 제국 황제 카를 4세) 시기에 정립되었다. 그는 보헤미아 왕국의 영토적 기반을 강화하고 확장하면서, 보헤미아 왕국을 중심으로 주변 영토들을 통합하려는 정책을 펼쳤다.
1526년, 합스부르크 가문이 보헤미아 왕위를 계승하면서 보헤미아 왕관령은 합스부르크 군주국의 일부가 되었다. 합스부르크 시대 초기에는 비교적 자율성을 유지했으나, 30년 전쟁 이후 합스부르크 가문의 중앙집권화 정책과 가톨릭화 정책으로 인해 보헤미아 신분의회의 권한이 약화되었다.
1848년 혁명 이후 민족주의가 대두하면서, 보헤미아 왕관령 내에서도 체코 민족의 자치권 요구가 거세졌다. 1867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성립되면서, 보헤미아 왕관령은 오스트리아의 일부로 남았다.
해체
제1차 세계 대전이 종식되고 1918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해체되면서, 보헤미아 왕관령의 개념은 소멸했다. 보헤미아, 모라바, 오스트리아령 실롱스크의 핵심 영토는 새롭게 독립한 체코슬로바키아 공화국의 주축을 이루게 되었다.
문화적 중요성
보헤미아 왕관령은 오랫동안 체코어 사용 인구와 독일어 사용 인구가 함께 거주하며 상호 영향을 주고받은 지역이었다. 이곳은 체코 민족의 역사와 정체성 형성의 핵심 무대였으며, 프라하와 같은 도시들은 중부 유럽의 중요한 문화 중심지 역할을 했다.
오늘날 보헤미아 왕관령의 영토 대부분은 체코 공화국에 속하며, 일부는 폴란드(실롱스크)와 독일에 속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