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흐마니 술탄국
바흐마니 술탄국은 14세기 중반부터 16세기 초까지 인도 남부 데칸 고원에 존재했던 이슬람 왕국이다. 1347년에 델리 술탄국으로부터 독립하여 아불 무자파르 알라 웃 딘 바흐만 샤(Ala-ud-Din Bahman Shah, 하산 강구 Bahmani)에 의해 건국되었다. 데칸 지역의 주요 세력 중 하나로서, 남쪽의 힌두 왕국인 비자야나가라 제국과 오랫동안 경쟁 관계에 있었다. 페르시아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 데칸 지역의 정치, 문화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역사 바흐마니 술탄국은 델리 술탄국의 무함마드 빈 투글루크(Muhammad bin Tughluq) 통치 시기 말기에 데칸 지역의 이슬람 귀족들과 장군들이 중앙 권력의 약화를 틈타 반란을 일으키면서 시작되었다. 반란 지도자 중 한 명인 하산 강구가 스스로 술탄이 되어 '알라 웃 딘 바흐만 샤'라는 칭호를 사용하며 바흐마니 왕조를 세웠다. 초기 수도는 오늘날 카르나타카 주에 위치한 굴바르가(Gulbarga, 당시 아흐사나바드)였다가, 아흐마드 샤 1세(Ahmad Shah I Wali) 때 비다르(Bidar)로 천도하였다. 술탄국은 약 150년 동안 데칸 지역의 강자로 군림하며, 북쪽으로는 타피 강, 남쪽으로는 크리슈나 강까지 영토를 확장했다. 말기에는 마흐무드 가완(Mahmud Gawan)과 같은 유능한 재상들이 등장하여 행정 개혁과 군사적 성공을 이끌기도 했으나, 내부의 파벌 싸움(데칸인과 아파키의 대립)과 왕위 계승 분쟁으로 점차 약화되었다.
문화 및 행정 바흐마니 술탄국은 페르시아 문화의 강한 영향을 받았다. 페르시아어가 궁정 언어이자 행정 언어로 사용되었으며, 페르시아, 중앙아시아 등지에서 온 학자, 상인, 군인들이 왕국의 발전에 기여했다. 건축, 문학, 미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페르시아 및 이슬람 양식이 도입되었다. 군사적으로는 기병대가 중요했으며, 대포 등 신무기를 도입하기도 했다. 행정 체계는 델리 술탄국의 모델을 따르면서도 지역적 특성을 반영했다.
이웃 왕국과의 관계 바흐마니 술탄국은 남쪽의 강력한 힌두 왕국인 비자야나가라 제국과 데칸 지역의 패권을 놓고 끊임없이 경쟁했다. 특히 크리슈나 강과 퉁가바드라 강 사이의 비옥한 지역인 라이추르 도압(Raichur Doab)을 둘러싸고 많은 전쟁이 벌어졌다. 이러한 경쟁은 두 왕국의 군사 기술과 전략 발전을 촉진시켰다. 북쪽으로는 구자라트 술탄국, 말와 술탄국 등과 관계를 맺거나 충돌하기도 했다.
쇠퇴 및 해체 16세기 초에 이르러 바흐마니 술탄국은 내부 갈등과 지방 총독들의 독립 움직임으로 인해 사실상 해체 수순을 밟게 되었다. 최종적으로 왕국은 5개의 독립적인 술탄국으로 분리되었다: 비다르 술탄국, 비자푸르 술탄국, 아흐마드나가르 술탄국, 베라르 술탄국, 골콘다 술탄국. 이 다섯 왕국을 통틀어 '데칸 술탄국'이라 부르며, 이들은 이후 약 2세기 동안 각기 독자적인 역사를 이어가다가 무굴 제국에 편입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