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슈 도쿠가와가
기슈 도쿠가와가는 일본 에도 시대의 유력한 다이묘 가문 중 하나로,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자손들로 구성된 도쿠가와 고산케(徳川御三家)의 한 축을 이루었다. 기슈 번(紀州藩)을 다스렸으며, 본거지는 기슈(현 와카야마현)의 와카야마 성(和歌山城)이었다. 쇼군 후계자가 없을 경우 대를 이을 수 있는 가문 중 하나로, 막부 정치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초대 당주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10남인 도쿠가와 요리노부(徳川頼宣)이다. 겐나 5년(1619년)에 기슈 55만 5천 석의 다이묘가 되면서 기슈 도쿠가와가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기슈 도쿠가와가에서는 8대 쇼군 도쿠가와 요시무네(徳川吉宗), 11대 쇼군 도쿠가와 이에나리(徳川家斉), 14대 쇼군 도쿠가와 이에모치(徳川家茂) 세 명의 쇼군이 배출되었다. 이는 고산케 중 가장 많은 쇼군을 배출한 기록이다. 특히 도쿠가와 요시무네는 '교호 개혁'을 단행하며 막부 중흥을 이끌었다.
기슈 도쿠가와가는 오와리 도쿠가와가, 미토 도쿠가와가와 함께 고산케로서, 쇼군 가문의 직계가 끊어졌을 때 후계를 잇는 지위를 가지고 있었다. 에도 막부의 유력한 신판(親藩) 다이묘로서 막부 정치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기슈 번은 55만 5천 석이라는 막대한 규모를 자랑했으며, 풍부한 산림 자원과 무역항 등을 통해 경제적 기반이 탄탄했다.
메이지 유신 이후 다이묘 제도가 폐지되면서 번주 지위는 사라졌으나, 기슈 도쿠가와가 당주는 화족으로서 작위를 수여받고 존속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