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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후

가후(賈詡, 147년 ~ 224년)는 후한 말부터 삼국시대 위나라의 전략가이자 정치가이다. 자는 문화(文和). 뛰어난 계책으로 여러 군주를 섬기며 위나라 건국에 공헌했다.

생애

가후는 무위 고장현(姑臧縣, 현재의 감숙성 무위시) 출신으로, 젊은 시절에는 명성이 없었다. 그러나 염충(閻忠)은 그를 '장량, 진평과 같은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효렴으로 천거되었으나 병을 핑계로 사직하고 귀향하던 중 강족에게 붙잡혔으나, 자신이 '단외의 외손'이라고 거짓말하여 풀려났다. 단외는 당시 강족에게 명성이 높은 인물이었다.

189년, 동탁이 정권을 장악하자 가후는 태위 조연(趙謙)의 연(掾)으로 임명되었다. 동탁 사후, 이각, 곽사 등이 왕윤을 죽이고 조정을 장악하자 가후는 이들에게 장안을 점거할 것을 권유했다. 이는 가후의 인생에서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 중 하나이다.

이후 장수(張繡)를 섬기며 여러 차례 조조를 곤경에 빠뜨렸다. 특히 완 전투에서는 조조의 장남 조앙(曹昂)과 조카 조안민(曹安民), 맹장 전위(典韋)를 전사시키는 큰 전과를 올렸다. 그러나 관도 대전 직전, 조조에게 투항할 것을 장수에게 권유했고, 장수는 이를 받아들여 조조에게 귀순했다.

조조는 가후의 재능을 높이 평가하여 그를 중용했다. 가후는 조조에게 군사적 전략과 정치적 자문을 제공하며 위나라 건국에 큰 공헌을 했다. 조비(曹丕)가 후계자 자리를 놓고 경쟁할 때, 가후는 원상(袁尙)과 원담(袁譚)의 사례를 들어 조비가 후계자가 되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220년, 조비가 위나라를 건국하자 가후는 태위에 임명되었고, 완향후(宛鄕侯)에 봉해졌다. 224년, 77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시호는 숙후(肅侯)이다.

평가

가후는 뛰어난 지략과 통찰력을 가진 전략가로 평가받는다. 그는 상황 판단 능력이 뛰어나 여러 군주를 섬기면서도 자신의 입지를 굳건히 했다. 특히, 조조에게 투항한 이후에는 위나라 건국에 큰 공헌을 했으며, 조조와 조비의 신임을 얻었다.

그러나, 동탁 사후 이각, 곽사에게 장안 점거를 권유한 것은 그의 인생에서 가장 큰 오점으로 평가받는다. 이로 인해 많은 백성이 고통을 겪었기 때문이다.

정사 삼국지에서는 "가후는 계책이 많았지만, 정직하지 못했다"라고 평가했다.

가계

  • 아버지: 가옹(賈珙)
  • 아들: 가목(賈穆), 가고(賈觚)