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에버렛 밀레이
존 에버렛 밀레이(Sir John Everett Millais, 1st Baronet, 1829년 6월 8일 – 1896년 8월 13일)는 영국의 화가이자 삽화가로, 라파엘 전파(Pre-Raphaelite Brotherhood)의 창립 멤버 중 한 명이었다. 빅토리아 시대의 가장 중요하고 성공적인 예술가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다.
생애
밀레이는 1829년 사우샘프턴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뛰어난 예술적 재능을 보여 신동으로 불렸으며, 11세의 어린 나이에 왕립 아카데미 학교에 입학하여 역대 최연소 입학 기록을 세웠다. 그는 이곳에서 윌리엄 홀먼 헌트(William Holman Hunt), 단테이 가브리엘 로세티(Dante Gabriel Rossetti)와 교류하며 라파엘 전파를 결성하게 된다.
라파엘 전파 시기 (1848년–1860년대 초)
1848년에 결성된 라파엘 전파는 라파엘로 이후의 매너리즘 미술과 아카데미즘에 반대하며, 자연에 대한 충실한 묘사, 풍부한 색채, 상징주의, 문학 및 종교적 주제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추구했다. 이 시기의 밀레이의 작품은 세밀한 묘사, 선명한 색상, 상징적인 디테일이 특징이다.
주요 작품으로는 셰익스피어의 『햄릿』에 등장하는 오필리아의 죽음을 그린 《오필리아》(Ophelia, 1851–52), 종교적 논란을 불러일으킨 《부모님의 집 그리스도》(Christ in the House of His Parents, 1849–50, 일명 목수의 작업장), 《이자벨라》(Isabella, 1849), 《마리아나》(Mariana, 1851), 《장님 소녀》(The Blind Girl, 1856) 등이 있다. 특히 《오필리아》는 풍경과 인물의 세밀하고 상징적인 표현으로 라파엘 전파의 대표작 중 하나로 꼽힌다. 초기 작품들은 전통적인 아카데미 양식에 대한 도전으로 인해 비평가들의 비난을 받기도 했으나, 점차 대중적인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후기 생애와 경력 변화
1860년대 초반부터 밀레이의 스타일은 점차 변화하여 라파엘 전파의 엄격한 원칙에서 벗어나 보다 자연스럽고 전통적인 방향으로 나아갔다. 그는 문학적, 종교적 주제보다는 인물 초상화와 풍경화에 집중하며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이 시기의 작품들은 뛰어난 기교와 대중적인 주제로 큰 인기를 누렸다.
그의 후기 작품 중 특히 유명한 것은 어린이들을 그린 그림들이다. 비누 광고에 사용되어 큰 화제가 되었던 《거품》(Bubbles, 1886)이 대표적이다. 그는 당대 영국의 저명한 인물들의 초상화 의뢰를 많이 받으며 막대한 부와 명성을 쌓았다.
1885년에는 준남작(Baronet) 작위를 받았고, 1896년 프레더릭 레이턴(Frederic Leighton) 경의 뒤를 이어 왕립 아카데미 회장으로 선출되었으나, 취임 후 몇 달 만에 후두암으로 사망했다.
주요 작품
- 《이자벨라》(Isabella, 1849)
- 《부모님의 집 그리스도》(Christ in the House of His Parents, 1849–50)
- 《마리아나》(Mariana, 1851)
- 《오필리아》(Ophelia, 1851–52)
- 《귀환》(The Return of the Dove to the Ark, 1851)
- 《석공》(The Woodman's Daughter, 1851)
- 《훈령》(The Order of Release 1746, 1852–53)
- 《장님 소녀》(The Blind Girl, 1856)
- 《가을 낙엽》(Autumn Leaves, 1856)
- 《노라의 설교》(The Vale of Rest, 1858)
- 《거품》(Bubbles, 1886)
영향과 평가
존 에버렛 밀레이는 초기 라파엘 전파 운동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으며, 그의 초기 작품들은 미술사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비록 후기에는 라파엘 전파의 이상에서 벗어났다는 비판도 있지만, 그의 뛰어난 기교와 대중적인 성공은 빅토리아 시대 영국 미술계에서 그의 입지를 확고히 했다. 그는 생전에 가장 부유하고 유명한 화가 중 한 명이었으며, 오늘날에도 그의 작품들은 전 세계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