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마우치 카즈토요
야마우치 카즈토요(일본어: 山内一豊, 1546년 또는 1545년 ~ 1605년 11월 1일)는 센고쿠 시대부터 에도 시대 초기까지 활동한 일본의 무장(武将)이자 다이묘(大名)이다. 오와리국(尾張国, 현 아이치현) 출신으로 알려져 있으며, 하타모토(直参旗本)였던 야마우치 모리토요(山内盛豊)의 차남이다.
야마우치 카즈토요는 처음에는 오와리 지역의 작은 무장을 섬기다가, 훗날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되는 기노시타 도키치로(木下藤吉郎)를 통해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를 섬기게 되었다. 오다 가문의 가신으로서 여러 전투에 참여하며 공을 세웠고, 노부나가 사후에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가신이 되어 그의 천하 통일 사업에 기여하며 영지를 늘렸다.
도요토미 히데요시 사후, 도쿠가와 이에야스(徳川家康)를 따르기로 결정했다. 1600년에 벌어진 세키가하라 전투(関ヶ原の戦い)에서는 동군(이에야스 측)에 가담하여 중요한 역할을 했다. 특히 전투 직전 이에야스에게 자신의 거성인 가케가와 성(掛川城, 현 시즈오카현)을 내주며 충성을 보였다는 일화가 유명하다. 이 공로로 전투 후 도사국(土佐国, 현 고치현) 20만 2천석(후에 24만 2천석)의 대영지를 하사받고, 도사 번(土佐藩)의 초대 번주(藩主)가 되었다.
도사국에 부임한 후, 기존 세력인 조소카베 가문(長宗我部氏)의 잔당 등을 제압하고 번의 통치 기반을 다졌다. 도사국의 중심지로 코치 성(高知城)을 축성했으며, 성의 건설과 새로운 영지의 안정화에 힘썼다.
야마우치 카즈토요는 1605년 코치 성이 거의 완성될 무렵 병으로 사망했다. 그의 아내 야마우치 지요(山内千代)와의 일화, 특히 가난했던 시절 지요가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짠 돈으로 남편을 위한 좋은 말을 샀다는 이야기는 부부간의 내조와 충성을 상징하는 미담으로 후대에 널리 알려져 있다. 다이묘로서 그는 새로운 영지인 도사를 안정시키고 코치 성을 쌓아 후대 번영의 기틀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