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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애 (삼국지 시리즈)

등애 (鄧艾, ? ~ 264년)는 삼국시대 위나라의 장군으로, 자는 사재(士載)이다. 본래 이름은 등범(鄧範)이었으나 후에 등애로 개명했다. 군둔전 시행과 험준한 지형을 활용한 기습 작전으로 촉한 정벌에 결정적인 공헌을 세웠으나, 종회의 모함으로 억울하게 죽임을 당했다.

생애

등애는 의양군 극양현(義陽郡 棘陽縣; 현재의 허난성 난양시) 출신으로, 젊은 시절에는 농사를 지으며 살았다. 둔전으로 군량을 확보하는 것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후 사마의에게 발탁되어 군사 관련 업무를 맡게 되었다. 여러 차례 진언을 통해 둔전의 중요성을 강조했고, 그 결과 위나라 각지에서 둔전이 시행되어 군량 확보에 크게 기여했다.

군사적 재능을 인정받아 점차 승진했으며, 강유가 이끄는 촉한군과의 전투에서 여러 차례 공을 세웠다. 특히, 답중(沓中)에서 강유를 격파하고, 강족과 협력하여 촉한을 압박하는 데 성공했다.

263년, 사마소의 명령으로 촉한 정벌에 참여하여, 종회와 함께 촉한을 공격했다. 등애는 험준한 지형을 무릅쓰고 음평(陰平)으로 진격, 강유의 방어선을 우회하여 촉한의 수도 성도(成都)를 위협했다. 결국 유선은 등애에게 항복했고, 이로써 촉한은 멸망했다.

죽음

촉한 정벌의 공으로 등애는 태위(太尉)에 임명되었고, 식읍도 크게 늘어났다. 그러나 종회는 등애의 공적을 시기하여, 그가 반역을 꾀하고 있다고 모함했다. 사마소는 종회의 말을 믿고 등애를 체포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결국 등애는 종회의 군대에 체포되었고, 이후 위관(衛瓘)에게 살해당했다. 그의 아들 등충(鄧忠) 또한 함께 죽임을 당했다.

평가

등애는 뛰어난 군사적 재능과 둔전 정책을 통해 위나라의 국력 강화에 기여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특히, 음평을 통한 기습 작전은 그의 대담함과 뛰어난 지략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하지만, 종회의 모함으로 억울하게 죽음을 맞이한 것은 그의 비극적인 면모를 드러낸다. 진수(陳壽)는 《삼국지》에서 등애를 "기묘한 계책과 용맹함으로 명성을 떨쳤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