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살로 게레로
곤살로 게레로(Gonzalo Guerrero, 1470년경 - 1536년)는 스페인 출신의 선원으로, 마야 문명에 동화되어 살았던 인물이다. 스페인 정복자들에게 저항하며 마야인들을 돕고 자신의 가족을 지키려 했던 그의 삶은 유럽과 아메리카 대륙 간의 문화적 충돌과 융합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1511년, 게레로는 산타마리아 데 라 바르카 호를 타고 파나마에서 산토도밍고로 항해하던 중 난파 사고를 당했다. 생존자들은 유카탄 반도 해안에 표류했고, 그곳에서 마야인들에게 붙잡혔다. 대부분의 생존자들은 희생 제물로 바쳐지거나 노예로 살았지만, 게레로와 헤로니모 데 아길라르는 탈출하여 마야 사회에 적응했다.
게레로는 나찬 칸이라는 마야 추장의 신임을 얻어 군사 전략가로 활동하며 명성을 쌓았다. 그는 마야인들에게 유럽식 전쟁 기술을 전수하고, 그들과 함께 스페인 정복자들에 맞서 싸웠다. 또한, 그는 마야 귀족 여성과 결혼하여 자녀를 낳았는데, 이들은 유럽인과 아메리카 원주민 사이에서 태어난 최초의 메스티소로 여겨지기도 한다.
1519년, 에르난 코르테스는 유카탄 반도에 도착하여 아길라르를 통해 게레로에게 합류를 제안했다. 그러나 게레로는 이미 마야 사회에 깊이 동화되었고, 자신의 가족을 버릴 수 없다는 이유로 코르테스의 제안을 거절했다. 이후 게레로는 스페인 정복자들과 마야인들 간의 전투에서 마야 측을 지지하며 싸웠고, 1536년 온두라스에서 스페인 군과의 전투 중 사망했다.
곤살로 게레로는 스페인에게는 배신자로 여겨지지만, 멕시코에서는 원주민의 편에 서서 싸운 영웅으로 추앙받고 있다. 그의 이야기는 정복 시대의 복잡한 관계와 문화적 정체성의 문제를 제기하며, 오늘날까지도 다양한 예술 작품과 역사 연구의 주제로 다루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