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겐페이 합전

겐페이 합전은 일본의 역사에서 헤이안 시대 말기인 1180년부터 1185년까지 약 6년간에 걸쳐 벌어진 미나모토 씨(源氏)와 다이라 씨(平氏) 사이의 일련의 대규모 내전입니다. 이 전쟁은 미나모토 씨의 승리로 끝나면서 다이라 씨 정권이 몰락하고 가마쿠라 막부(鎌倉幕府)가 성립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으며, 약 700년간 지속된 일본 무사 정권 시대의 서막을 알린 역사적 사건입니다.

배경 헤이안 시대 말기, 섭관정치(攝關政治)를 주도하던 후지와라 씨의 권력이 약화되면서 천황이나 상황(법황) 중심의 인세이(院政)가 강화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지방의 무사 계급이 중앙 정치에 개입할 기회가 늘어났고, 그중에서도 간토 지방을 기반으로 한 미나모토 씨와 이세 지방을 기반으로 한 다이라 씨가 점차 세력을 키워나갔습니다. 특히 다이라노 기요모리(平淸盛)가 주도하는 다이라 씨가 헤이안 시대 말기 정권을 장악하고 귀족화되면서 전횡을 일삼자, 이에 반발하는 세력이 커졌습니다. 1180년, 다이라 씨에 의해 유배된 고시라카와 법황의 아들 모치히토 왕자(以仁王)가 미나모토 씨 등 여러 세력에게 다이라 토벌을 위한 거병을 촉구하는 영지(令旨)를 내린 것이 겐페이 합전의 직접적인 발단이 되었습니다.

전개 모치히토 왕자의 거병 시도는 초기에 진압되었으나, 이를 계기로 일본 각지에서 미나모토 씨를 중심으로 한 반(反)다이라 세력의 봉기가 일어났습니다. 이즈(伊豆)에서 미나모토노 요리토모(源賴朝)가, 시나노(信濃)에서 미나모토노 요시나카(源義仲, 기소 요시나카)가, 무쓰(陸奧)에서 미나모토노 요시쓰네(源義經) 형제가 거병하여 세력을 규합했습니다. 초기에는 다이라 씨가 교토를 중심으로 우세한 전력을 보였으나, 미나모토노 요시나카가 1183년 구리카라 전투에서 다이라 군에게 대승을 거두고 교토로 입성하면서 전세가 역전되었습니다. 이후 요시나카가 전횡을 일삼다 요리토모가 파견한 군대에 의해 토벌되면서 미나모토 씨의 주도권이 요리토모에게로 모였습니다.

주요 전투 겐페이 합전 중에는 여러 중요한 전투가 벌어졌습니다.

  • 우지 전투 (1180): 모치히토 왕자와 미나모토노 요리마사(源賴政)가 다이라 군에 대항했으나 패배했습니다.
  • 구리카라 전투 (1183): 미나모토노 요시나카가 다이라 군에게 화공(火攻)을 활용하여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며 다이라 씨의 몰락을 예고했습니다.
  • 이치노타니 전투 (1184): 미나모토노 요시쓰네와 노리요리 형제가 셋쓰(攝津)국의 이치노타니에 주둔한 다이라 군을 기습하여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 야시마 전투 (1185): 요시쓰네가 시코쿠(四國)의 야시마에서 해상으로 도망친 다이라 군을 추격하여 승리했습니다.
  • 단노우라 전투 (1185): 시모노세키(下關) 해협의 단노우라에서 벌어진 최후의 해전으로, 미나모토노 요시쓰네의 지휘 아래 미나모토 수군이 다이라 수군에게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면서 다이라 씨의 주요 인물들이 대부분 전사하거나 자살했습니다.

결과 및 의의 단노우라 전투에서의 패배로 다이라 씨는 거의 멸망했으며, 겐페이 합전은 미나모토 씨의 압승으로 막을 내렸습니다. 전쟁에서 승리한 미나모토노 요리토모는 1185년 각지에 슈고(守護)와 지토(地頭)를 설치하여 전국적인 지배력을 확립하고, 1192년 가마쿠라(鎌倉)에 막부를 세워 세이이타이쇼군(征夷大將軍)에 취임했습니다. 이는 귀족 중심의 정치 시대가 막을 내리고 약 700년간 무사에 의한 정치(무가정권)가 시작되는 중요한 전환점이었습니다. 겐페이 합전은 일본 역사와 문화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이를 소재로 한 군담소설 『헤이케 이야기(平家物語)』는 일본 중세 문학의 걸작으로 남아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