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 성균관
개성 성균관 (開城成均館)은 고려 시대에 수도 개경(현재의 개성)에 설치되었던 최고 교육 기관이다. 오늘날의 국립 대학에 해당하며, 고려 시대의 학문과 유교 교육의 중심지 역할을 수행하였다.
역사 개성 성균관은 고려 초기에 설립된 국자감(國子監)에서 비롯되었다. 국자감은 성종 11년(992년)에 처음 설립되어 고려의 중앙 교육 기관으로 기능했다. 이후 여러 차례의 제도 변화와 명칭 변경을 거쳤으며, 충렬왕 25년(1299년)에 성균감(成均監)으로 개칭되었다가 공민왕 11년(1362년)에 성균관(成均館)으로 명칭이 확정되었다. 개성 성균관은 고려 왕조가 멸망할 때까지 최고의 교육 기관으로서 인재 양성에 힘썼다.
기능 및 역할 개성 성균관의 주요 기능은 유교 경전을 가르치고, 이를 통해 국가의 미래를 이끌어갈 관료 후보생을 양성하는 것이었다. 유학을 중심으로 다양한 학문을 가르쳤으며, 과거 제도가 정착됨에 따라 성균관은 과거 시험 준비의 중요한 관문이 되었다. 또한, 공자를 비롯한 역대 유학의 선현들에게 제사를 지내는 석전대제(釋奠大祭)를 봉행하는 기능도 수행하여 유교 이념 전파의 역할도 겸했다.
건축 및 배치 개성 성균관은 전형적인 성균관의 건축 양식을 따랐다. 교육 공간인 명륜당(明倫堂)과 선현에게 제사를 지내는 제례 공간인 대성전(大成殿)이 중심을 이루었다. 유생들이 기거하며 공부하는 동재(東齋)와 서재(西齋) 등의 기숙사 건물과 부속 건물들이 배치되었다. 현재 남아 있는 개성 성균관 건물들은 조선 시대에 중수되거나 개축된 흔적을 포함하고 있으나, 고려 시대 성균관의 기본적인 배치와 기능은 유지된 것으로 파악된다.
현재 고려 멸망 후 조선 왕조가 한양(서울)에 새로운 성균관을 설립하면서 개성 성균관의 교육 기능은 약화되었다. 그러나 건물 자체는 보존되어 현재 북한 개성시에 남아 있으며, 북한의 국보 유적으로 지정되어 있다. 현재는 고려 시대의 유물을 전시하는 고려박물관(高麗博物館)으로 사용되고 있다. 2013년에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개성 역사 유적 지구'의 일부로 등재되어 국제적인 중요성을 인정받았다.
의의 개성 성균관은 고려 시대의 교육 제도와 유교 문화의 발달을 보여주는 중요한 유적이다. 고려 사회의 인재 양성 시스템과 학문 수준을 이해하는 데 있어 핵심적인 역할을 하며, 한국 교육사 및 문화사에서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