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산파 숙청 사건
갑산파 숙청 사건은 1967년 조선로동당 내에서 김일성의 권력 강화를 위해 갑산파로 지목된 연안파 및 일부 국내파 세력을 숙청한 정치적 사건이다. 갑산파는 1950년대 후반부터 김일성의 정책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던 세력으로, 주로 함경남도 갑산 지역 출신 인사들로 구성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배경
1950년대 말, 김일성은 천리마 운동 등 급진적인 경제 정책을 추진하면서 당 내외에서 비판에 직면했다. 특히, 연안파와 일부 국내파는 소련과 중국의 지원을 받아 성장한 세력으로, 김일성의 독자 노선에 불만을 품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김일성은 자신의 권력 기반을 강화하고 반대 세력을 제거하기 위해 갑산파를 숙청하기로 결정했다.
전개
1967년 3월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제4기 15차 전원회의에서 김일성은 갑산파를 "분파 행위"와 "반당적 행위"를 일삼는 세력으로 규정하고 대대적인 숙청을 단행했다. 박금철, 이효순, 김도만 등 갑산파 주요 인물들은 당에서 제명되고 숙청되었으며, 일부는 처형되거나 수용소에 감금되었다. 이 과정에서 갑산파와 연관되었다는 혐의를 받은 수많은 당원과 주민들이 숙청 대상이 되었다.
결과 및 영향
갑산파 숙청 사건을 통해 김일성은 당 내의 반대 세력을 제거하고 유일 지배 체제를 확립했다. 이 사건 이후 조선로동당은 김일성의 개인숭배가 더욱 강화되었으며, 당의 정책 결정 과정에서 김일성의 의사가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었다. 또한, 갑산파 숙청은 북한 사회 전반에 걸쳐 사상 통제를 강화하고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 사건은 북한 현대사의 중요한 전환점으로 평가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