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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라 다카시

하라 다카시(1856년 3월 15일 ~ 1921년 11월 4일)는 일본의 정치가, 외교관이다. 메이지 시대부터 다이쇼 시대에 걸쳐 활동했으며, 입헌정우회의 총재를 역임하고 일본 제2차 세계 대전 이전 시대를 통틀어 최초의 평민 출신 총리대신을 지냈다. 호는 잇산(一山).

생애

이와테현 모리오카에서 난부 번의 가신 집안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총명하여 번교인 속수관(速修館)에서 수학했다. 도쿄 법학교(현 도쿄 대학 법학부)를 졸업한 후, 외무성에 들어가 외교관 생활을 시작했다. 주프랑스 공사관 서기관 등을 역임하며 외교관으로서의 경력을 쌓았다.

외무성 퇴직 후, 미쓰이 물산에 입사하여 실업가로서도 활동했다. 이후 정계에 입문하여 1900년 입헌정우회 창당에 참여, 이토 히로부미를 보좌하며 당의 실력자로 부상했다. 1914년에는 입헌정우회 총재에 취임하여 당을 이끌었다.

1918년, 시베리아 출병 문제 등으로 혼란스러운 정국 속에서 데라우치 마사타케 내각이 총사퇴하자, 하라 다카시는 일본 최초의 본격적인 정당 내각인 하라 내각을 조직했다. 그는 "정당 정치는 곧 의회 정치"라는 신념 하에 의회를 중시하는 정책을 펼쳤으며, 교육 확대, 교통망 정비, 산업 진흥 등 다양한 분야에서 업적을 남겼다. 또한, 보통 선거 도입을 추진하는 등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했다.

1921년, 교토에서 열린 정우회 간친회에 참석하기 위해 도쿄역에 도착했을 때, 나카오카 곤이치라는 청년에게 암살당했다. 향년 65세.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일본 정치계에 큰 충격을 주었으며, 일본의 민주주의 발전에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평가

하라 다카시는 일본 정치사에서 중요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그는 일본 최초의 평민 출신 총리로서, 정당 내각의 기반을 다지고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귀족원 중시 정책, 언론 탄압 등의 비판도 존재한다. 그의 정치적 유산은 오늘날까지도 일본 정치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참고 문헌

  • (저자), (서적명), (출판사), (출판년도)
  • (저자), (논문명), (학술지명), (발행년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