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립 드 샤니
필립 드 샤니(Philippe de Charny)는 14세기 후반의 프랑스 기사이자 리레(Lirey)의 영주이다. 그는 토리노 수의(Shroud of Turin)가 처음으로 공개적으로 전시되었을 때 이를 소유하고 있던 인물로 알려져 있으며, 이로 인해 토리노 수의의 역사에서 중요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그의 아내인 잔 드 베르지(Jeanne de Vergy)는 토리노 수의의 잠재적인 초기 소유자로 여겨지는 제프루아 드 샤니(Geoffroy de Charny)의 손녀였다.
생애
필립 드 샤니의 정확한 출생 연대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1390년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는 제프루아 드 샤니의 딸인 잔 드 샤니(Jeanne de Charny)의 딸, 즉 제프루아의 손녀인 잔 드 베르지와 결혼했다. 이 결혼을 통해 필립 드 샤니는 그의 처가 가문과 토리노 수의를 연결하게 된다.
1350년대 혹은 1360년대에 그는 자신이 소유한 수의를 프랑스 샹파뉴(Champagne) 지방의 리레에 있는 교구 교회에서 처음으로 공개 전시했다. 이 전시는 즉시 논란을 불러일으켰는데, 당시 트루아(Troyes)의 주교였던 피에르 다르시(Pierre d'Arcis)는 이 수의가 예수 그리스도의 진짜 매장 수의가 아니라 기교 있게 그려진 그림이라고 주장하며 전시를 강력히 반대했다. 필립 드 샤니는 주교의 주장에 맞서 수의의 진품성을 옹호했으나, 교회의 공식적인 인정은 받기 어려웠다.
토리노 수의와의 관계
필립 드 샤니는 토리노 수의의 역사를 통틀어 매우 중요한 인물로 여겨진다. 비록 그의 장인(제프루아 드 샤니)이 수의를 어떻게 입수했는지에 대한 논란은 여전히 있지만, 필립 드 샤니가 수의를 처음으로 공개적으로 전시함으로써 이 유물이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은 분명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와 트루아 주교 사이의 논쟁은 토리노 수의 진위 논란의 시작을 알리는 사건이기도 했다.
그의 사후 수의는 아내인 잔 드 베르지에게 상속되었고, 이후 잔 드 베르지의 노력으로 교황 클레멘스 7세의 조건부 승인을 받아 리레에서의 전시가 재개되기도 했다. 수의는 이후 사보이아 가문을 거쳐 1983년 이탈리아 토리노 대성당에 기증되어 현재까지 보관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