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시뇨프 포그롬
키시뇨프 포그롬은 1903년 4월 19일부터 21일까지 (율리우스력 기준으로는 4월 6일부터 8일까지) 러시아 제국 베사라비아 현의 수도 키시뇨프 (현재 몰도바의 수도 키시너우)에서 발생한 유대인 학살 사건이다. 반유대주의 언론의 선동과 사회 경제적 불안정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수백 명의 유대인이 살해당하고 수천 명이 부상당했으며, 유대인 소유의 재산이 약탈당하고 파괴되었다.
배경
19세기 후반 러시아 제국 내에서 유대인은 차별적인 법률과 사회적 편견에 시달리고 있었다. 특히 "정착촌" 지역에 거주가 제한되었고, 경제 활동과 교육 기회에 제약이 많았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반유대주의적 정서가 확산되었고, 유대인을 사회 문제의 희생양으로 삼는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키시뇨프에서는 베사라베츠라는 반유대주의 신문이 유대인을 비방하고 폭력을 선동하는 기사를 실어 여론을 악화시키는 데 기여했다. 또한, 정치적 불안정과 경제적 어려움이 겹치면서 사회 불만이 고조되었고, 유대인은 이러한 불만의 표적이 되었다.
경과
포그롬은 부활절 기간 동안 발생했다. 반유대주의자들은 유대인이 기독교 어린이를 살해했다는 허위 소문을 퍼뜨리며 군중을 선동했다. 군중은 유대인 거주 지역으로 몰려가 유대인을 공격하고 재산을 파괴했다. 경찰과 군대는 소극적으로 대응하거나 방관하여 폭력을 더욱 확산시켰다. 3일 동안 계속된 포그롬으로 인해 49명에서 50명에 달하는 유대인이 살해당하고, 수백 명이 부상당했으며, 많은 유대인 여성들이 성폭행을 당했다. 또한, 수많은 유대인 가옥과 상점이 파괴되거나 약탈당했다.
결과 및 영향
키시뇨프 포그롬은 국제적인 공분을 일으켰고, 전 세계적으로 반유대주의에 대한 비판이 고조되었다. 이 사건은 시오니즘 운동의 확산과 유대인의 팔레스타인 이주를 가속화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 또한, 러시아 내 유대인의 처지에 대한 국제적인 관심이 증가하면서 러시아 정부에 대한 압력이 가해졌다. 키시뇨프 포그롬은 20세기 초 러시아에서 발생한 일련의 포그롬 중 하나였으며, 홀로코스트를 비롯한 이후의 유대인 학살의 전조로 여겨지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