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시 내친왕
일본의 황족이자 가인(歌人). 고시라카와 천황(後白河天皇)의 황녀이며, 구조 요시쓰네(九条良経)의 부인이다. 사후의 원호(院号)는 후쿄고쿠인(後京極院)이다. 헤이안 시대 말기에서 가마쿠라 시대 초기에 걸쳐 살았던 인물로, 뛰어난 와카(和歌) 시인이자 문학 후원자로 알려져 있다.
생애
죠안 3년(1173년)에 고시라카와 천황의 황녀로 태어났다. 어머니는 보몬노 쓰보네(坊門局)이다. 건큐 2년(1191년)에 내친왕 선하를 받았다. 겐큐 9년(1198년)에 당시 간파쿠(関白)였던 구조 가네자네(九条兼実)의 아들인 구조 요시쓰네와 결혼하였다. 이 결혼은 당시 강력한 권력을 가졌던 구조 가문과 황실 간의 중요한 정치적 연결 고리였다.
남편 요시쓰네가 겐큐 9년(1206년)에 37세의 나이로 급사하자, 케이시 내친왕은 큰 충격을 받았다. 이듬해인 조겐 2년(1208년)에 출가하여 비구니가 되었다. 출가 후에도 문학적 활동을 이어갔다.
겐포 원년(1213년) 9월 27일에 사망하였다. 향년 41세. 사후에 '후쿄고쿠인'이라는 원호를 받았다.
활동 및 평가
케이시 내친왕은 당대를 대표하는 가인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다. 그녀의 와카는 『신코킨와카슈』(新古今和歌集)를 비롯한 여러 칙찬와카슈(勅撰和歌集)에 실려 있다. 특히 『신코킨와카슈』에는 21수가 수록되어 있어, 여성 가인으로서는 이즈미 시키부(和泉式部), 무라사키 시키부(紫式部) 다음으로 많은 수를 기록하고 있다.
또한 그녀는 문학 후원에도 힘썼으며, 많은 문인들과 교류하며 당대 와카 문학의 발전에 기여하였다. 남편 요시쓰네 역시 문인으로서 뛰어났기에, 두 사람의 결혼 생활 동안 문학적 교류가 활발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케이시 내친왕은 황실의 일원으로서 정치적 관계 속에 살았지만, 남편 사후 출가하여 독자적인 문학 세계를 구축하고 후원 활동을 펼침으로써 당대 사회와 문화에 큰 영향을 미친 인물로 기억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