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크뮐 전투
에크뮐 전투는 1809년 4월 21일부터 22일까지 프랑스 제1제국(및 동맹국)과 오스트리아 제국 사이에 벌어진 전투이다. 이 전투는 제5차 대프랑스 동맹 전쟁(War of the Fifth Coalition)의 일부로, 현재 독일 바이에른주에 속한 에겐뮐(Eggmühl, 당시 에크뮐) 근교에서 발생했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직접 지휘하는 프랑스군이 오스트리아군 주력을 상대로 결정적인 승리를 거둔 전투로 평가된다.
배경 1809년 초, 오스트리아는 프랑스가 스페인에 전력을 집중한 틈을 타 프랑스에 선전포고하고 바이에른을 침공하며 제5차 대프랑스 동맹 전쟁이 시작되었다. 오스트리아군 사령관인 카를 대공은 프랑스군이 분산된 틈을 타 각개 격파하려 했으나, 나폴레옹이 신속하게 전장에 도착하여 휘하의 군단을 재편성하고 집중시켰다. 에크뮐 전투는 나폴레옹이 레겐스부르크 주변에서 복잡하게 움직이는 오스트리아군을 포위하거나 격파하기 위한 일련의 기동 중 절정에 달한 전투였다.
전개 4월 21일, 나폴레옹은 아벤스베르크(Abensberg) 근교에서 오스트리아군 좌익 일부를 격파하며 오스트리아 전선을 둘로 갈랐다. 이 과정에서 카를 대공 휘하의 오스트리아 주력군이 에크뮐 근처에 집결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나폴레옹은 다음날인 22일, 이곳으로 전력을 집중했다. 4월 22일, 프랑스군과 바이에른 동맹군은 에크뮐 근처의 오스트리아군 좌익과 중앙에 대한 공격을 감행했다. 특히 프랑스군의 측면 공격과 기병대의 돌격이 오스트리아군에게 큰 피해를 입혔다. 치열한 전투 끝에 오스트리아군은 전선이 무너지면서 후퇴를 시작했다. 프랑스 기병대는 퇴각하는 오스트리아군을 맹렬히 추격하며 더 큰 혼란과 피해를 입혔다. 오스트리아군은 결국 레겐스부르크를 통해 도나우강 북쪽으로 철수했다.
결과 및 영향 에크뮐 전투는 프랑스의 결정적인 승리로 끝났다. 오스트리아군은 막대한 병력 손실(사상자 및 포로)과 함께 다수의 야포를 상실했다. 무엇보다 카를 대공 휘하의 오스트리아 주력군이 둘로 나뉘어 도나우강 남쪽의 빈 방어선에서 이탈하게 되었다. 이 승리로 나폴레옹은 오스트리아군의 주력을 성공적으로 격파하고 빈으로 진격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이 전투는 나폴레옹이 그의 탁월한 전략적 기동과 전술적 운용 능력을 다시 한번 입증한 사례로 꼽힌다.
평가 에크뮐 전투는 1809년 나폴레옹이 거둔 여러 승리 중에서도 특히 중요한 전술적/전략적 의미를 지닌다. 나폴레옹은 신속한 병력 집중과 과감한 기동을 통해 오스트리아군의 계획을 좌절시키고 주력을 격파했다. 이 전투의 승리는 제5차 대프랑스 동맹 전쟁의 향방을 프랑스에게 유리하게 바꾸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