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리자와 가모
세리자와 가모 (芹沢 鴨, 1826년 ~ 1863년 9월 16일)는 막말의 무사이며 신선조의 초대 필두 국장이다. 미토번 출신으로, 본명은 기무라 게이사쿠(木村 継次)이며, 가모는 자(字)이다.
생애
미토번에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후일 무술 실력을 인정받아 번사로 등용되었다. 검술 실력은 상당하여, 신도무념류를 익혔다고 전해진다. 분큐 3년 (1863년), 로시구미 결성에 참여하여 교토로 상경, 곤도 이사미, 니이미 니시키 등과 함께 잔류하여 미부로시(후의 신선조)를 결성했다.
미부로시 결성 후, 곤도 이사미와 함께 필두 국장 자리에 올랐으나, 난폭하고 방탕한 행실로 인해 주변의 불만을 샀다. 술에 취해 문제를 일으키는 일이 잦았으며, 금전 갈취, 살인 등도 서슴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행위는 신선조의 이미지를 실추시키는 원인이 되었으며, 내부적으로도 곤도 이사미를 중심으로 한 세력과 대립하게 되었다.
결국, 분큐 3년 9월 16일, 곤도 이사미, 히지카타 도시조 등의 계획에 의해 암살되었다. 암살 장소는 그의 거처였던 야기 저택이었다. 세리자와 가모의 죽음으로 곤도 이사미가 신선조의 실질적인 최고 권력자가 되었다.
인물 평가
세리자와 가모는 뛰어난 검술 실력을 지녔지만, 동시에 난폭하고 방탕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그의 행위는 신선조의 초창기 이미지를 형성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으며, 조직 내부의 갈등을 심화시키는 요인이 되기도 했다. 따라서, 세리자와 가모는 신선조 역사에서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을 동시에 지닌 복합적인 인물로 평가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