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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등산 포위전

백등산 포위전 (白登山包圍戰)은 기원전 200년, 한나라의 고조 유방이 흉노의 묵돌 선우에게 백등산 (현재의 중국 산시성 다퉁시 동북쪽)에서 포위당했던 사건이다. 한나라 건국 초기의 불안정한 상황과 흉노의 강력한 군사력이 맞물려 발생한 이 사건은 한나라에게 큰 위협이 되었으며, 이후 한나라의 대 흉노 외교 정책에 큰 영향을 미쳤다.

배경

유방은 진나라를 멸망시키고 초나라와의 전쟁 (초한쟁패)에서 승리하여 한나라를 건국했지만, 국가의 기반은 아직 굳건하지 못했다. 반면 흉노는 묵돌 선우의 지도 아래 주변 지역을 정복하며 급속하게 세력을 확장하고 있었다. 한나라의 한신, 팽월 등의 제후왕들이 반란을 일으키는 등 국내 정세가 불안정한 상황에서 흉노는 한나라 북방 지역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전개

유방은 흉노를 정벌하기 위해 직접 군대를 이끌고 북방으로 출정했다. 초기에 유방은 흉노의 별동대를 격파하며 기세를 올렸으나, 백등산에 이르러 묵돌 선우의 주력 부대에 포위당했다. 흉노의 기병은 백등산을 완전히 봉쇄했고, 한나라 군대는 보급이 끊긴 채 극심한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려야 했다. 유방은 수일 동안 포위망을 벗어나지 못하고 고립되었다.

결과 및 영향

유방은 흉노의 연지에게 뇌물을 바쳐 포위망을 늦추도록 설득했고, 흉노 내부의 알력 다툼을 이용해 간신히 포위망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백등산 포위전 이후 한나라는 흉노와의 직접적인 군사적 충돌을 피하고, 공주를 흉노에 시집보내고 매년 막대한 양의 공물을 바치는 화친 정책을 펼치게 되었다. 이러한 화친 정책은 한나라 초기 국력 회복에 기여했지만, 동시에 흉노의 영향력 아래 놓이는 결과를 초래했다. 백등산 포위전은 한나라가 흉노에 대해 취한 최초의 대규모 군사 작전의 실패 사례로 기록되었으며, 이후 한나라의 대 흉노 정책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