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WIPIVERSE

🔍 현재 등록된 정보: 38,332건

발터 할슈타인

발터 할슈타인(Walter Hallstein, 1901년 11월 17일 ~ 1982년 3월 29일)은 독일의 정치인이자 법학자이다. 그는 유럽 연합의 전신인 유럽 경제 공동체(EEC)의 초대 집행위원회 위원장(President of the Commission)을 역임하며 전후 유럽 통합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인물로 평가받는다.

생애 및 초기 경력

프로이센 왕국 뷔르츠부르크에서 태어난 할슈타인은 본, 뮌헨, 베를린 대학교에서 법학을 공부했다. 학업을 마친 후 그는 교수로 재직하며 국제법 분야에서 명성을 쌓았다. 프랑크푸르트 대학교 법학부 학장을 지내기도 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중에는 독일군으로 복무했고, 전쟁 포로로 미국에 억류되기도 했다.

독일 정부에서의 활동

전쟁 후 서독으로 돌아온 할슈타인은 정치에 입문했다. 그는 1950년 서독 외무부의 국무차관(State Secretary)으로 임명되어 콘라트 아데나워 총리 휘하에서 활동했다. 이 시기에 그는 서독 외교 정책의 근간 중 하나가 된 소위 '할슈타인 원칙'(Hallstein Doctrine)의 정립 및 실행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할슈타인 원칙은 동독을 국가로 인정한 국가들과는 외교 관계를 맺지 않는다는 내용을 골자로 했다.

유럽 통합에서의 역할

할슈타인의 가장 중요한 기여는 유럽 통합 분야에서 이루어졌다. 그는 1952년 유럽 석탄 철강 공동체(ECSC)의 고위 당국(High Authority) 위원으로 활동하며 유럽 공동체 설립 과정에 참여했다.

1958년 로마 조약 발효와 함께 유럽 경제 공동체(EEC)가 설립되자, 그는 만장일치로 초대 집행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출되었다. 그는 1967년까지 약 9년간 이 직책을 수행하며 EEC의 초기 발전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위원장으로서 할슈타인은 EEC의 초국가적 성격을 강화하고, 공동체 내에서 강력한 중앙 집행 기구의 역할을 강조했다. 그는 관세 동맹의 완성과 공동 농업 정책의 시행 등 EEC의 주요 정책들을 추진했으며, 회원국 간의 정치적 통합을 향한 비전을 제시했다. 그의 리더십은 종종 '할슈타인 위원회'로 불리며, EEC의 기능과 권위를 확립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1965년에는 프랑스의 샤를 드골 대통령과의 '공석 위기'(Empty Chair Crisis)를 겪기도 했는데, 이는 EEC의 초국가주의적 방향과 회원국 주권 간의 긴장을 보여주는 사례였다. 이 위기는 결국 프랑스의 복귀와 일부 양보로 해결되었으나, 할슈타인의 위원장직 사퇴로 이어졌다.

말년

집행위원장직에서 물러난 후에도 할슈타인은 유럽 통합을 위한 활동을 계속했다. 그는 1969년부터 1972년까지 독일 기독교민주연합(CDU) 소속으로 독일 연방의회 의원을 지냈다. 또한 그는 '유럽의 미국'(The United States of Europe)이라는 저서를 통해 유럽 연방 국가 건설의 비전을 역설하기도 했다.

발터 할슈타인은 1982년 독일 슈투트가르트 근교의 자택에서 사망했다. 그의 이름은 유럽 통합 운동의 선구자 중 한 명으로 역사에 기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