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녕
관녕(管寧, 158년 ~ 241년)은 후한 말부터 삼국시대 위나라 초기에 걸쳐 활동한 은사(隱士)이자 유학자이다. 자는 유안(幼安)이며, 북해군(北海郡) 주허현(朱虛縣) 사람이다. 고결한 인품과 학문으로 명망이 높았으나, 권력 다툼을 멀리하고 평생을 은거하며 학문에 정진했다.
생애
관녕은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학문을 좋아했다. 화흠(華歆), 병원(邴原)과 함께 학문에 힘썼으며, 세 사람은 각기 재능이 뛰어나 '일룡(一龍)'이라고 불렸다. 관녕은 특히 고결하고 속세를 멀리하는 성품으로 유명했다.
후한 말, 천하가 혼란에 빠지자 관녕은 현란(玄菟)으로 이주하여 10여 년 동안 은거 생활을 했다. 그는 갈대밭을 개간하여 농사를 지으며 자급자족했고, 거문고를 즐겨 연주하며 마음을 달랬다. 그의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았으나, 관녕은 쉽게 사람을 만나지 않았다.
조위(曹魏) 건국 후, 조조(曹操)는 관녕의 명성을 듣고 그를 조정으로 불러들이려 여러 차례 시도했다. 그러나 관녕은 모두 거절하고 은거 생활을 이어갔다. 위 문제(魏文帝) 조비(曹丕) 또한 관녕을 존경하여 여러 차례 벼슬을 내렸으나, 관녕은 끝까지 사양하며 고향으로 돌아갔다.
고향으로 돌아온 관녕은 학문에 더욱 정진하며 후학 양성에 힘썼다. 그는 경서(經書)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많은 제자를 길러냈으며, 그의 학문은 널리 퍼져나갔다.
관녕은 8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죽음에 많은 사람들이 슬퍼했으며, 그의 고결한 인품과 학문은 오랫동안 사람들에게 존경받았다.
평가
관녕은 혼탁한 시대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신념을 지킨 고결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그는 권력과 명예를 멀리하고 학문에 전념하며 후학 양성에 힘썼으며, 그의 삶은 많은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었다.
관련 인물
- 화흠(華歆)
- 병원(邴原)
- 조조(曹操)
- 조비(曹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