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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도 이사미

곤도 이사미(일본어: 近藤 勇, こんどう いさみ, 1834년 11월 9일 ~ 1868년 5월 17일)는 에도 시대 말기의 무사(사무라이)로, 신센구미(新選組)의 국장(局長)을 지낸 인물이다. 본명은 시마자키 가쓰고로(島崎 勝五郎)이며, 후에 곤도 이사미로 개명했다.

무사 계급이 아닌 농민 출신이었으나, 천연이심류(天然理心流) 검술을 익혀 에도에 있는 시에이칸(試衛館) 도장의 사범이 되었다. 1863년, 교토의 치안 유지를 위해 쇼군을 호위하는 로시구미(浪士組)에 참가했으며, 로시구미가 해산된 후 교토에 남아 아이즈번(会津藩)의 보호 아래 신센구미를 결성하고 국장이 되었다.

신센구미는 존왕양이(尊王攘夷) 세력의 활동이 활발했던 교토에서 치안 유지 활동을 수행하며, 특히 1864년의 이케다야 사건(池田屋事件)을 통해 그 이름을 널리 알렸다. 곤도 이사미는 엄격한 규율과 강력한 리더십으로 신센구미를 이끌었다.

메이지 유신(明治維新)이 일어나 보신 전쟁(戊辰戦争)이 발발하자, 곤도 이사미는 신정부군에 맞서 구막부군 측에서 싸웠다. 고슈카쓰누마 전투(甲州勝沼の戦い)에서 패배한 후 나가레야마(流山)에서 신정부군에 체포되었다.

신정부군은 곤도 이사미를 막부의 핵심 인물로 간주했으며, 그를 막부의 충신으로 처형하는 것이 신정부의 정당성을 강화하는 데 유리하다고 판단했다. 결국 곤도 이사미는 1868년 4월 25일(음력) 이타바시(板橋)에서 참수당했다.

곤도 이사미는 막부 말기 혼란기 속에서 마지막까지 도쿠가와 막부에 대한 충성을 지켰던 인물로 평가받으며, 신센구미의 리더로서 일본의 역사와 대중문화에 깊은 영향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