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평릉 사변
고평릉 사변(高平陵事變)은 249년, 위나라의 권신이었던 사마의가 조상 일파를 제거하고 실권을 장악한 정변이다. 이 사건으로 조위 정권은 사실상 사마씨의 손에 넘어가게 되었으며, 이후 사마염에 의해 진나라가 건국되는 발판이 되었다.
사마의는 조조 시기부터 중용되었으나, 조비와 조예 대에는 정치적 입지가 불안정했다. 조예가 죽고 어린 조방이 즉위하자, 조상은 대장군이 되어 정권을 독점하고 사마의를 태부라는 명예직으로 올려 권력에서 소외시켰다.
조상은 정권을 잡은 후 자신의 측근들을 요직에 앉히고 사치스러운 생활을 즐겼으며, 군사적 역량도 부족했다. 사마의는 이를 기회 삼아 병을 핑계로 은거하며 때를 기다렸다.
249년 정월, 조방이 고평릉(高平陵)에 참배를 간 틈을 타 사마의는 반란을 일으켰다. 사마의는 곽태후의 조서를 위조하여 군대를 동원하고 낙양을 장악했다. 그는 조상에게 죄를 묻고, 조상의 측근들과 함께 체포하여 처형했다.
고평릉 사변 이후 사마의는 위나라의 실권을 완전히 장악하고, 자신의 아들인 사마사와 사마소에게 권력을 물려주었다. 사마씨는 이후 조위 정권을 완전히 장악하고, 266년 사마염이 위나라를 멸망시키고 진나라를 건국했다. 고평릉 사변은 위나라의 멸망과 진나라 건국의 결정적인 계기가 된 사건으로 평가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