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9년 티베트 봉기
1959년 티베트 봉기(중국에서는 '3.10 사건'이라고도 함)는 1959년 3월 10일 라싸에서 시작되어 중국의 지배에 저항한 티베트인들의 봉기이다. 이 봉기는 1950년 중화인민공화국이 티베트를 침공한 이후 계속된 티베트 사회의 긴장과 불만이 폭발한 사건이었다.
배경
1950년 중국은 티베트를 '평화적으로 해방'한다는 명분으로 군대를 진주시켜 티베트를 점령했다. 중국은 티베트의 자치를 보장한다고 약속했지만, 실제로는 티베트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 걸쳐 영향력을 확대하려 했다. 중국은 티베트에서 토지 개혁을 추진하고, 사원을 파괴하고, 티베트 문화를 억압하는 정책을 시행하여 티베트인들의 불만을 샀다.
전개
봉기는 1959년 3월 10일, 달라이 라마가 중국군 사령부에서 공연을 관람하라는 초청을 받으면서 시작되었다. 티베트인들은 달라이 라마가 중국군에 납치될 것을 우려하여 라싸의 노르불링카 궁전을 에워싸고 달라이 라마를 보호하기 시작했다. 시위는 곧 중국의 지배에 대한 저항으로 확대되었고, 수천 명의 티베트인들이 봉기에 참여했다.
중국군은 봉기를 무력으로 진압하기 시작했다. 라싸 시내에서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고, 수많은 티베트인들이 사망했다. 달라이 라마는 3월 17일, 라싸를 탈출하여 인도로 망명했다. 봉기는 결국 진압되었지만, 티베트인들의 저항은 계속되었다.
결과 및 영향
1959년 티베트 봉기는 티베트 역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봉기의 실패로 인해 달라이 라마는 망명길에 올랐고, 티베트는 중국의 직접적인 통치하에 놓이게 되었다. 중국은 티베트에서 더욱 강력한 억압 정책을 시행했고, 티베트 문화는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봉기 이후, 수많은 티베트인들이 인도로 망명하여 달라이 라마를 중심으로 티베트 망명 정부를 수립했다. 티베트 망명 정부는 국제 사회에 티베트의 상황을 알리고, 티베트의 자치를 위한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1959년 티베트 봉기는 현재까지도 티베트 문제의 중요한 역사적 배경으로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