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쇼다 사건
파쇼다 사건 (Fashoda Incident)은 1898년, 수단 남부 파쇼다(현재의 코독) 지역에서 영국과 프랑스가 아프리카 식민지 쟁탈을 놓고 벌인 외교적 충돌 사건이다.
배경
19세기 말, 유럽 열강들은 아프리카 대륙을 분할하는 '아프리카 분할' 경쟁에 뛰어들었다. 영국은 이집트에서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이르는 아프리카 종단 정책(Cape to Cairo)을 추진했고, 프랑스는 서아프리카에서 동아프리카로 뻗어 나가는 횡단 정책을 추진했다. 이러한 영국과 프랑스의 정책은 수단 지역에서 충돌할 가능성이 높았다.
전개
1898년 7월, 프랑스의 장바티스트 마르샹 소령이 이끄는 탐험대가 파쇼다에 도착하여 프랑스 국기를 게양했다. 두 달 후, 호레이쇼 키치너 경이 이끄는 영국군이 파쇼다에 도착하여 프랑스군에게 철수를 요구했다. 양국 군대는 무력 충돌 직전까지 갔으나, 양국 정부는 외교적 협상을 통해 해결하기로 결정했다.
결과
프랑스는 결국 파쇼다에서 철수했고, 수단은 영국의 영향력 아래 놓이게 되었다. 프랑스는 영국에게 수단에 대한 지배권을 인정하는 대신, 서아프리카 지역에서 더 많은 영토를 확보했다. 파쇼다 사건은 영국과 프랑스 간의 관계를 악화시켰지만, 양국은 이후 독일의 위협에 맞서기 위해 협력하게 된다. 이 사건은 제1차 세계 대전 이전의 유럽 열강들의 제국주의 경쟁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평가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