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미어
토마스 프랜시스 미어(Thomas Francis Meagher, 1823년 8월 23일 ~ 1867년 7월 1일)는 아일랜드의 민족주의 지도자, 연설가, 그리고 미국 남북전쟁 시기 북군의 장성(준장)이다. "검의 미어"(Meagher of the Sword)라는 별칭으로도 알려져 있다.
아일랜드의 워터퍼드에서 태어난 그는 1840년대 후반에 영 아일랜드 운동(Young Irelander movement)의 주요 인물로 부상했다. 그는 아일랜드의 독립과 자치를 위해 목소리를 높였으며, 뛰어난 연설 능력으로 대중의 지지를 얻었다. 1848년 아일랜드 전역에서 일어난 봉기 시도에 가담했으나 실패하고 체포되었다. 처음에는 사형 선고를 받았지만, 후에 반 디멘스 랜드(Van Diemen's Land, 현 타스마니아)로의 종신 유형으로 감형되었다.
타스마니아에서 유형 생활을 하던 중 1852년에 탈출하여 미국으로 망명했다. 뉴욕에 정착한 그는 언론 활동과 강연 등을 통해 아일랜드계 미국 사회에서 영향력을 유지했다. 미국 남북전쟁이 발발하자 그는 북군에 자원입대했으며, 주로 아일랜드 이민자로 구성된 아이리시 여단(Irish Brigade)의 창설과 지휘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 여단은 전쟁 중 여러 주요 전투(프레더릭스버그 전투, 챈슬러스빌 전투 등)에서 용맹하게 싸웠으나 막대한 인명 손실을 입었다. 그는 준장으로 진급하여 여단을 이끌었다.
남북전쟁이 끝난 후, 그는 미국 서부의 몬태나 준주(Montana Territory)로 이주하여 총독 대행(acting governor)으로 임명되었다. 몬태나에서의 정치 활동 중 1867년 7월, 미주리 강가의 포트 벤턴(Fort Benton)에서 사망했다. 그의 사망 원인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으며, 강에서 익사한 것으로 추정되지만 사고사인지 타살인지에 대한 논란이 남아있다.
토마스 프랜시스 미어는 아일랜드의 민족주의 운동과 미국 남북전쟁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인물로 기억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