캔자스 준주
캔자스 준주 (Kansas Territory)는 1854년 캔자스-네브래스카 법에 따라 미국 의회가 조직한 준주로, 1861년 캔자스주로 승격되기 전까지 존재했다. 준주의 존속 기간 동안, 노예제 찬반 양 진영 간의 격렬한 갈등이 벌어져 “피 흘리는 캔자스(Bleeding Kansas)”라는 별칭으로 불리기도 했다.
캔자스 준주는 현재의 캔자스 주와 콜로라도 주의 일부 지역을 포함하는 광대한 영토였다. 이 지역은 원래 루이지애나 매입의 일부였으며, 미주리 타협에 따라 노예주로 편입될 가능성이 낮았다. 그러나 캔자스-네브래스카 법은 주민자치를 통해 노예제 허용 여부를 결정하도록 함으로써, 노예제 찬반 논쟁에 불을 붙였다.
미주리 주에서 건너온 노예제 옹호론자들은 준주 내에 정착하여 노예제를 합법화하려 했고, 북부 지역의 폐지론자들은 자유주를 건설하기 위해 캔자스로 이주했다. 이러한 대립은 폭력 사태로 이어졌고, 특히 로렌스 약탈 사건(Sack of Lawrence)과 포타와토미 학살 사건(Pottawatomie Massacre)과 같은 사건들은 준주 내 갈등의 심각성을 보여준다. 존 브라운과 같은 인물은 이러한 폭력 사태에 깊이 관여했으며, 그의 행동은 이후 남북 전쟁의 전조로 여겨지기도 한다.
준주 의회는 친노예제 성향의 의원들이 다수를 차지했지만, 자유주 지지자들은 자체적인 의회를 구성하여 대립했다. 이러한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캔자스는 여러 번의 헌법 제정 시도를 겪었으며, 마침내 1861년 캔자스는 자유주로 연방에 가입하게 되었다. 캔자스 준주의 역사는 미국 내 노예제 문제의 복잡성과 갈등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로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