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 내전
오스트리아 내전 (독일어: Österreichischer Bürgerkrieg)은 1934년 2월 12일부터 16일까지 오스트리아 제1공화국에서 일어난 무력 충돌이다. 이 내전은 오스트리아 사회민주노동당(SDAPÖ)과 그 준군사 조직인 공화국수호동맹(Republikanischer Schutzbund)에 대항하여 엥겔베르트 돌푸스(Engelbert Dollfuß) 총리가 이끄는 오스트리아 기독사회당(CS) 정부와 그 지지 세력, 그리고 준군사 조직인 향토방위단(Heimwehr)이 벌인 싸움이었다.
내전의 직접적인 원인은 돌푸스 정부가 슈츠분트의 무장을 해제하려 시도하면서 촉발되었다. 정부는 린츠(Linz)에서 슈츠분트의 무기 은닉처를 수색하려 했으나, 이는 좌파 세력의 격렬한 저항을 불러일으켰다. 곧 빈(Wien), 그라츠(Graz), 비너노이슈타트(Wiener Neustadt) 등 주요 도시에서 전투가 벌어졌다.
정부군은 군대와 경찰력을 동원하여 슈츠분트를 진압했다. 특히 빈에서는 노동자들이 강력한 저항을 펼쳤으나, 정부군의 압도적인 화력 앞에 무릎을 꿇었다. 내전은 며칠 만에 정부군의 승리로 끝났고, 사회민주당은 불법화되었으며, 많은 사회주의자들이 체포되거나 처형되었다.
오스트리아 내전은 오스트리아 제1공화국의 종말과 오스트리아 파시즘(Austrofascism) 체제의 확립으로 이어졌다. 돌푸스는 권위주의적인 통치를 강화하고 이탈리아 파시즘의 영향을 받은 전체주의적 국가를 건설하려 했다. 이 내전은 또한 오스트리아 사회에 깊은 상처를 남겼으며, 이후 오스트리아의 정치적 발전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1938년 나치 독일의 오스트리아 병합 이후에도 내전의 기억은 저항 운동의 중요한 동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