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랄르 쿠실라르
야랄르 쿠실라르 (칼미크어: Ялалт Кужиларлар, 로마자: Yalalt Kuzhilarlar)는 역사적으로 1771년에 러시아 제국에서 중가리아(Dzungaria)로 귀환한 칼미크인들을 지칭하는 용어이다. 이 용어는 칼미크어로 '승리한 쿠지라르인들' 또는 '승리한 중가르인들'을 의미하며, 혹독한 귀환 여정을 견뎌내고 살아남아 중가리아에 도착한 이들을 기리는 이름이다. 이 사건은 칼미크 역사에서 매우 중요하고 비극적인 사건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칼미크 대탈출 또는 우쉬-가르(Уш-Гар)라고도 불린다.
칼미크인들은 본래 몽골계 민족인 오이라트 연맹의 일부로, 17세기 초에 볼가강 하류 지역으로 이주하여 칼미크 칸국을 세웠다. 이들은 러시아 차르국(이후 러시아 제국)과 복잡한 관계를 맺으며 자치를 유지했으나, 18세기 중반 이후 러시아의 간섭과 압력이 점차 심화되었다. 러시아는 칼미크인들의 영토를 잠식하고, 전통적인 유목 생활 방식에 제한을 가했으며, 군사적 동원을 요구했다. 이러한 압력과 함께 본래의 근거지인 중가리아(당시 청나라의 영향권 아래 있었음)로 돌아가고자 하는 염원이 커졌다.
1771년 1월, 칼미크 칸국의 지도자 울라시 칸(Убаши хан)은 약 17만 명의 칼미크인들을 이끌고 볼가강 동쪽 강변에서 대규모 동방 이동을 시작했다. 이들은 겨울철 얼어붙은 강을 건너 시베리아와 중앙아시아의 광활한 스텝 지역을 지나 중가리아를 향했다. 그러나 이 여정은 극도로 고통스러웠다. 수많은 사람들이 추위, 굶주림, 질병, 그리고 길목에 있던 카자흐인, 바시키르인 등 다른 유목 민족들의 공격으로 사망했다. 약 6개월간의 처절한 여정 끝에 중가리아에 도착한 칼미크인의 수는 최초 출발 인원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약 5만 ~ 7만 명에 불과했다고 알려져 있다.
"야랄르 쿠실라르"라는 이름은 이 살아남은 이들이 단순한 생존을 넘어, 자신들의 본향으로 돌아가겠다는 목표를 '승리'로 달성했음을 상징한다. 죽음의 문턱을 넘어 도착한 이들은 중가리아(오늘날 신장 지역)에 정착하게 되었고, 청나라의 통치 하에 놓였다.
1771년 대탈출 사건은 볼가강 유역의 칼미크 칸국의 종말을 가져왔으며, 러시아에 남아 있던 소수의 칼미크인들은 러시아 제국의 직접적인 통치 하에 놓이게 되었다. 이 사건은 칼미크 민족의 역사와 정체성에 깊은 상흔을 남겼으며, 현재까지도 중요한 역사적 기억으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