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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스 왕조

아바스 왕조는 이슬람 역사상 가장 중요한 칼리파 왕조 중 하나로, 무함마드의 숙부인 아바스 이븐 압둘 무탈리브의 후손들에 의해 세워졌다. 750년에 우마이야 왕조를 무너뜨리고 등장하여 1258년 몽골의 침입으로 바그다드가 함락될 때까지 존속했으며, 이후 맘루크 왕조의 보호 아래 이집트 카이로에서 1517년까지 명목상 칼리파로서 유지되었다.

기원 우마이야 왕조 말기, 아랍인 중심의 지배에 대한 비아랍계 무슬림(마왈리)의 불만이 커지고, 칼리파 계승권을 둘러싼 분쟁이 심화되면서 아바스 가문은 우마이야 왕조에 반대하는 세력을 규합했다. '다와(Da'wah)' 운동이라는 비밀 조직을 통해 페르시아 지역의 지지를 얻은 아바스 왕조는 750년 자브 전투에서 우마이야 군대를 격파하고 다마스쿠스를 함락시켰다. 아바스 왕조는 이후 우마이야 가문을 거의 몰살시키고 새로운 칼리파 시대를 열었다.

황금기 (750년경 ~ 9세기 후반) 아바스 왕조는 정권을 잡은 후 수도를 다마스쿠스에서 메소포타미아 지방의 쿠파로 옮겼다가, 762년에 새로운 수도 바그다드를 건설했다. 바그다드는 빠르게 성장하여 당시 세계 최대 규모의 도시이자 학문, 문화, 상업의 중심지가 되었다. 특히 제5대 칼리파 하룬 알 라시드와 그의 아들 알 마으문의 통치 시기는 아바스 왕조의 황금기로 불린다. 이 시기에는 그리스, 페르시아, 인도 등의 고전 문헌이 아랍어로 번역되는 대규모 번역 운동이 활발히 일어났으며, 바그다드의 '지혜의 집(바이트 알 히크마)'을 중심으로 철학, 과학, 수학, 의학, 문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눈부신 발전이 이루어졌다. 비아랍계 무슬림이 동등한 대우를 받게 되면서 제국의 통합과 문화적 다양성이 증진되었다.

쇠퇴 (10세기 ~ 12세기) 9세기 후반부터 아바스 왕조는 내부적인 문제와 외부적인 압력으로 인해 점차 쇠퇴하기 시작했다. 칼리파의 권위가 약화되고, 각지에서 독립적인 에미르(아미르)들이 등장하면서 제국의 영토는 실질적으로 분할되었다. 특히 군사 노예(맘루크, 굴람)의 영향력이 커지고, 부와 권력을 둘러싼 내분이 끊이지 않았다. 외부적으로는 비잔티움 제국과의 국경 분쟁, 십자군 전쟁, 셀주크 투르크와 같은 유목민 왕조의 침입 등에 시달렸다. 11세기에는 셀주크 투르크가 바그다드를 장악하고 칼리파는 명목상의 종교적 권위만 유지하게 되었다.

멸망 (1258년) 13세기 중반, 몽골 제국의 서방 원정군이 중동으로 진격했다. 훌라구 칸이 이끄는 몽골군은 1258년 바그다드를 포위하고 함락시켰다. 이 과정에서 도시는 파괴되고 수많은 주민들이 학살되었으며, 마지막 칼리파 알 무스타심이 처형되면서 바그다드를 수도로 하는 아바스 칼리파국은 종말을 맞았다.

후기 (카이로 명목상 칼리파 시대, 1261년 ~ 1517년) 바그다드가 함락된 후, 살아남은 아바스 가문의 한 사람이 이집트의 맘루크 왕조의 보호를 받아 카이로에서 칼리파를 칭하며 명맥을 이었다. 그러나 이 카이로 칼리파는 실제적인 정치적, 군사적 권력은 전혀 없었고, 단지 맘루크 술탄에게 정통성을 부여하는 상징적인 존재에 불과했다. 1517년 오스만 제국이 이집트를 정복하면서 마지막 카이로 아바스 칼리파가 퇴위(또는 오스만 술탄에게 칼리파 칭호를 넘겨주었다는 설)하면서 아바스 칼리파 왕조는 완전히 막을 내렸다.

영향 및 유산 아바스 왕조 시대는 '이슬람 황금기'로서 인류 문명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고대 지식을 보존하고 발전시켰으며, 이를 통해 중세 유럽의 르네상스에도 간접적으로 영향을 주었다. 바그다드를 중심으로 한 광대한 제국은 다양한 문화와 민족을 통합하며 이슬람 문명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기여했다. 행정 제도, 법률, 금융 시스템 등 여러 분야에서 발전이 이루어졌으며, 이슬람 세계 전역으로 지식과 기술이 확산되는 기반을 마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