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떠이 전투
선떠이 전투는 1883년 12월 프랑스와 청나라 사이에서 벌어진 통킹(Tonkin, 현재의 베트남 북부) 지역 분쟁의 중요한 전투 중 하나이다. 프랑스의 통킹 점령 시도에 맞서 청나라의 흑기군(黑旗軍, Black Flag Army)이 선떠이(Sơn Tây)에서 강력한 저항을 펼쳤다.
배경
19세기 후반, 프랑스는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식민지 확장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었고, 베트남을 그 주요 목표 중 하나로 삼았다. 당시 베트남은 응우옌 왕조가 통치하고 있었으나, 국력이 약화되어 프랑스의 영향력이 점차 확대되고 있었다. 청나라는 베트남이 역사적으로 조공 관계에 있었고, 프랑스의 베트남 점령 시도를 자국의 안보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하여 개입하게 된다.
전투 과정
선떠이는 하노이 서쪽에 위치한 전략적 요충지로, 흑기군의 지도자 유영복(劉永福, Lưu Vĩnh Phúc)이 강력한 방어선을 구축하고 있었다. 프랑스군은 아메데 쿠르베(Amédée Courbet) 제독의 지휘 하에 선떠이를 공격했으며,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흑기군은 용맹하게 싸웠으나, 프랑스군의 우수한 화력과 조직력에 밀려 결국 패배하게 된다.
결과 및 영향
선떠이 전투에서 프랑스가 승리하면서 통킹 지역에 대한 프랑스의 영향력이 더욱 강화되었다. 이 전투는 이후 프랑스와 청나라 간의 본격적인 전쟁인 청불 전쟁(清法戰爭, Sino-French War)의 전조가 되었다. 선떠이 전투의 패배는 청나라에게 큰 타격이었으며, 프랑스의 식민지 확장에 대한 우려를 증폭시키는 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