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WIPIVERSE

🔍 현재 등록된 정보: 60,976건

부하라 토후국

부하라 토후국 (Bukhara Emirate)은 1785년부터 1920년까지 중앙아시아에 존재했던 망기트 왕조의 국가이다. 티무르 왕조의 후예를 자처하며 중앙아시아의 주요 도시 부하라를 중심으로 번성했다.

개요

부하라 토후국은 아스트라한 한국의 쇠퇴 이후, 망기트 부족의 수장 무함마드 라힘이 부하라 한국을 멸망시키고 스스로 에미르 (Amir, 토후)를 칭하며 건국되었다. 국교는 수니 이슬람교였으며, 샤리아에 기반한 법률 체계를 유지했다. 토후국은 농업, 수공업, 그리고 실크로드 무역을 통해 경제적 번영을 누렸다. 부하라, 사마르칸트, 카르시, 샤흐리삽스와 같은 주요 도시들은 상업과 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수행했다.

역사

초기 부하라 토후국은 주변 지역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며 코칸트 한국, 히바 한국과 경쟁했다. 19세기 들어 러시아 제국의 남하 정책에 직면하게 되면서 점차 쇠퇴의 길을 걷게 된다. 1868년, 러시아 제국과의 전쟁에서 패배한 후 러시아 제국의 보호국이 되었으며, 외교권과 군사권을 상실하고 경제적으로 종속되었다.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러시아 혁명의 영향으로 부하라 지역에서도 독립 운동이 일어났고, 1920년 붉은 군대에 의해 정복되어 부하라 인민 소비에트 공화국이 수립되면서 멸망했다. 이후 부하라 인민 소비에트 공화국은 소련의 중앙아시아 공화국들에 편입되었다.

정치

부하라 토후국은 에미르가 통치하는 전제 군주국이었다. 에미르는 정치, 군사, 종교적인 권력을 모두 장악했으며, 샤리아 법에 따라 통치했다. 토후국의 행정은 디반 (Diwan)이라 불리는 관료 조직에 의해 수행되었으며, 각 지역은 지방 관리들이 통치했다.

사회 및 문화

부하라 토후국 사회는 이슬람 문화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수니 이슬람교가 사회 전반에 걸쳐 큰 영향을 미쳤으며, 교육과 학문 또한 중요하게 여겨졌다. 부하라에는 많은 마드라사 (이슬람 학교)가 설립되어 종교, 법률, 과학, 문학 등을 가르쳤다. 또한, 부하라 토후국은 페르시아 문화의 영향을 받아 페르시아 문학, 예술, 건축 등이 발달했다.

주요 에미르

  • 무함마드 라힘 (1758-1785) : 망기트 왕조 창시자
  • 샤 무라드 (1785-1800)
  • 나스룰라 칸 (1827-1860)
  • 무자파르 앗딘 (1860-1885)
  • 압둘 아하드 칸 (1885-1910)
  • 알림 칸 (1910-1920) : 마지막 에미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