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파시아누스
티투스 플라비우스 베스파시아누스(Titus Flavius Vespasianus, 9년 11월 17일 – 79년 6월 23일)는 플라비우스 왕조의 창건자이자 로마 제국의 9대 황제(69년 – 79년)이다. 네 명의 황제의 해 혼란기에 집권하여 로마 제국에 안정과 질서를 가져왔다.
생애
베스파시아누스는 이탈리아 중부의 레아테(Reate)에서 평범한 가문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티투스 플라비우스 사비누스는 세관 징수관이었고, 어머니 베스파시아 폴라는 부유한 가문 출신이었다. 형제로는 형인 티투스 플라비우스 사비누스가 있었다. 베스파시아누스는 군사적 재능을 발휘하여 빠르게 승진했으며, 43년 클라우디우스 황제의 브리타니아 침공에 참여하여 공을 세웠다. 이후 아프리카와 게르마니아에서 복무하며 명성을 쌓았다.
66년, 유대 속주에서 반란이 일어나자 네로 황제는 베스파시아누스를 진압 사령관으로 임명했다. 그는 뛰어난 군사적 능력과 냉철한 판단력으로 반란군을 압박하며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 68년 네로 황제가 자살하고 갈바, 오토, 비텔리우스가 연이어 황위를 차지하며 로마 제국은 극심한 혼란에 빠졌다. 이러한 혼란 속에서 베스파시아누스는 이집트 총독 티베리우스 알렉산더와 시리아 총독 가이우스 리키니우스 무키아누스의 지지를 받아 황제에 추대되었다.
치세
69년, 베스파시아누스는 비텔리우스를 물리치고 로마 황제가 되었다. 그는 제국을 안정시키기 위해 노력하며, 재정 확충, 군대 재건, 공공사업 추진 등 다양한 정책을 시행했다. 특히, 그는 세금 제도를 개혁하여 제국의 재정을 안정화시켰으며, 군대를 재건하여 제국의 방어력을 강화했다. 또한, 콜로세움 건설을 시작하여 로마 시민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하고 제국의 위엄을 과시했다. 유대 전쟁은 그의 아들 티투스에 의해 70년에 예루살렘 함락과 함께 종결되었다.
죽음
베스파시아누스는 79년 6월 23일, 69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그의 뒤를 이어 아들 티투스가 황제가 되었다. 베스파시아누스는 검소하고 실용적인 성격으로 인해 존경받았으며, 플라비우스 왕조의 기틀을 다진 황제로 평가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