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그리트 당굴렘
마르그리트 당굴렘 (Marguerite d'Angoulême, 1492년 4월 11일 ~ 1549년 12월 21일)은 프랑스의 공주이자 작가, 예술 후원가이다. 프랑수아 1세의 누이이며, 나바라 왕국의 여왕 마르그리트 1세 (Marguerite I of Navarre)로도 알려져 있다.
생애
앙굴렘 백작 샤를 드 발루아와 루이사 디 사보이아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오빠 프랑수아 1세와 매우 가까운 관계를 유지했으며, 그의 정치적, 문화적 야망을 적극적으로 지지했다. 마르그리트는 뛰어난 지성과 교양을 갖춘 인물로, 당대 최고의 학자들과 교류하며 폭넓은 지식을 쌓았다. 1509년 알랑송 공작 샤를 4세와 결혼했으나, 남편은 1525년 파비아 전투에서 전사했다. 1527년 나바라 왕국의 앙리 2세와 재혼하여 나바라 여왕이 되었다.
문화적 영향
마르그리트 당굴렘은 프랑스 르네상스 문화의 중요한 후원자였다. 그녀는 문학, 예술, 종교 개혁 운동에 관심을 갖고, 많은 예술가와 작가들을 후원했다. 특히, 그녀의 살롱은 당대 지식인들의 교류의 장이 되었으며, 프랑스 문화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녀는 또한 자신의 작품을 직접 집필하기도 했는데, 대표작으로는 1558년 출판된 단편 소설 모음집인 《에프타메롱》이 있다. 이 작품은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의 영향을 받았으며, 사랑, 종교, 인간의 본성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그녀의 작품은 당대 사회의 풍속과 사상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종교적 관점
마르그리트 당굴렘은 종교 개혁 시기에 개혁적인 성향을 보였다. 그녀는 에라스무스의 인문주의 사상에 영향을 받았으며, 종교적 관용과 개인의 신앙을 강조했다. 그녀는 마르틴 루터의 주장을 지지하기도 했지만, 가톨릭 교회와의 완전한 단절은 원하지 않았다. 이러한 그녀의 종교적 입장은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지만, 그녀는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고 종교 개혁 운동을 지지했다.
사후
마르그리트 당굴렘은 1549년 12월 21일 프랑스 오도스에서 사망했다. 그녀의 딸 잔 달브레는 나바라 여왕이 되었으며, 훗날 프랑스 왕 앙리 4세의 어머니가 되었다. 마르그리트 당굴렘은 프랑스 르네상스 시대의 중요한 인물로, 그녀의 문화적, 정치적 영향은 후대에까지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