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닝터우 전투
구닝터우 전투는 1949년 10월 25일부터 27일까지 중화민국 국군과 중화인민공화국 인민해방군 사이에 중화민국 진먼섬(금문도)에서 벌어진 전투이다. 이 전투는 국공내전 후기 인민해방군이 대만으로 진공하기 위한 전 단계로 진먼섬에 상륙을 시도했으나, 중화민국 국군이 이를 성공적으로 저지하고 상륙 부대를 격멸시킴으로써 중화민국이 승리한 전투이다.
배경 1949년 10월 1일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된 후, 인민해방군은 중국 대륙에서 국민당군을 빠르게 남쪽으로 밀어붙였다. 국민당 정부는 본토를 상실하고 대만으로 이전하였으며, 진먼섬과 마쭈섬은 대만 본섬을 방어하는 최전방 기지 역할을 하게 되었다. 인민해방군은 대만 점령의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 진먼섬을 우선적으로 점령하려 계획했다.
전투 경과 인민해방군은 1949년 10월 25일 새벽, 약 12,000명의 병력을 태운 함정을 이용해 진먼섬 북서부 해안의 구닝터우, 룽커우, 후웨이 등에 분산 상륙을 시도했다. 그러나 인민해방군은 충분한 상륙용 주정(선박)과 후속 지원 능력이 부족했으며, 상륙 지점에 대한 정보와 계획이 치밀하지 못했다. 중화민국 국군은 진먼섬에 잘 준비된 방어 시설과 병력을 갖추고 있었으며, 특히 해안에 설치된 장애물과 미리 배치된 전차 부대(M5A1 스튜어트 전차)의 지원이 효과적이었다. 중화민국 국군은 상륙 직후부터 강력한 저항에 나섰고, 상륙한 인민해방군 부대는 해변에 고립되어 보급 및 증원 없이 치열한 전투를 벌여야 했다. 국군은 조직적인 방어와 반격을 통해 10월 27일까지 상륙한 인민해방군 병력 대부분을 섬멸하거나 포로로 잡는 데 성공했다.
결과 및 영향 구닝터우 전투는 인민해방군에게 큰 타격을 입혔으며, 중화인민공화국의 즉각적인 대만 침공 계획을 좌절시키는 결정적인 결과를 가져왔다. 중화민국은 진먼섬을 성공적으로 방어함으로써 대만 방어선을 강화하고, 이후 수십 년간 양안 관계의 군사적 긴장 상태를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 전투는 중화민국 국군에게는 사기 진작의 계기가 되었고, 인민해방군에게는 해상 상륙 작전의 어려움과 준비의 중요성을 깨닫게 한 사건으로 평가된다.
피해 이 전투에서 인민해방군은 약 9,000명 이상의 병력을 잃었으며 (전사, 부상, 포로 포함), 상륙 부대 대부분이 소멸되었다. 중화민국 국군 역시 약 3,000명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