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오르기 치체린
게오르기 바실리예비치 치체린 (러시아어: Георгий Васильевич Чичерин, 1872년 11월 24일 – 1936년 1월 7일)은 러시아의 혁명가이자 소비에트 연방의 외교관, 정치인이다. 그는 1918년부터 1930년까지 초대 소련 외무인민위원(외무장관)을 역임하며 소련 외교의 기틀을 다졌다.
생애 및 경력
귀족 가문 출신으로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학교에서 역사학을 전공했다. 일찍이 사회민주주의 운동에 참여하여 멘셰비키에 가담했으나, 이후 볼셰비키로 전향했다. 1904년 혁명 운동에 참여했다가 체포되어 국외로 망명, 서유럽 각지를 돌며 사회주의 운동을 펼쳤다. 제1차 세계대전 기간에는 반전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1917년 러시아 혁명 이후 러시아로 귀국, 볼셰비키 정부에 합류했다. 1918년 레프 트로츠키의 후임으로 외무인민위원에 임명되어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 체결을 주도했다. 이후, 독일과의 라팔로 조약, 영국과의 무역 협정 등 서방 국가들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했다. 뛰어난 외교적 수완으로 소련의 국제적 고립을 극복하고, 국제 사회에서 소련의 위상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했다.
그러나, 1930년대 스탈린의 권력 강화 과정에서 숙청의 위협을 느끼고 건강 악화를 이유로 사임했다. 이후 은퇴 생활을 보내다 1936년 모스크바에서 사망했다.
업적 및 평가
치체린은 소련 외교의 아버지로 불린다. 그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 혼란스러운 국제 정세 속에서 소련의 외교 정책을 수립하고 실행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서방 국가들과의 관계 개선, 독일과의 협력 등을 통해 소련의 국제적 고립을 타개하고, 소련의 국익을 보호하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그의 외교 정책이 이상주의적이라는 비판도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