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립 셰리든
필립 헨리 셰리든 (Philip Henry Sheridan, 1831년 3월 6일 ~ 1888년 8월 5일)은 미국의 직업군인이자 남북 전쟁 기간 중 북군 장군으로 활동한 인물이다. 그는 뛰어난 기병 지휘관으로 명성을 얻었으며, 특히 셰넌도어 계곡 작전과 오버랜드 작전 등에서 북군의 승리에 크게 기여했다. 그의 공격적인 전술과 '총력전' 개념 적용은 전쟁의 양상을 바꾸는 데 영향을 미쳤다.
생애 및 경력:
셰리든은 뉴욕주 올버니에서 태어났으며, 웨스트포인트(미국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소위로 임관했다. 남북 전쟁이 발발하자 그는 서부 전선에서 병참 장교로 복무하며 두각을 나타냈고, 빠르게 진급하여 장군의 반열에 올랐다.
- 서부 전선 (1862-1864): 페리빌 전투, 스톤리버 전투, 치카모가 전투, 채터누가 전투 등 주요 전투에 참여하며 보병 및 기병 사단을 성공적으로 지휘했다. 특히 채터누가 전투에서 미셔너리 리지 돌격 시 그의 사단이 보여준 활약은 그랜트 장군의 신뢰를 얻는 계기가 되었다.
- 동부 전선 및 기병 지휘 (1864-1865): 1864년 율리시스 S. 그랜트가 북군 총사령관이 된 후, 셰리든은 동부 전선으로 이동하여 포토맥군의 기병대를 지휘하게 되었다. 그는 기병대를 독립적인 공격 부대로 활용하며 남군 기병대와 맞서 싸웠다. 특히 옐로 태번 전투에서 남군 기병대 사령관 젭 스튜어트를 치명상을 입히며 남군 기병 전력에 큰 타격을 주었다.
- 셰넌도어 계곡 작전 (1864): 셰리든은 셰넌도어 계곡에서 북군 사령관을 맡아 남군 잔여 병력을 격파하고, 남군의 보급로이자 식량 생산지였던 계곡의 농업 기반을 철저히 파괴하는 '총력전'을 수행했다. 이는 남군의 사기와 물자에 심각한 타격을 주었다. 특히 세더 크릭 전투에서는 불리했던 전황을 자신의 극적인 도착과 지휘로 역전시키며 큰 승리를 거두었고, 이는 "셰리든의 질주"로 유명해졌다.
- 애퍼매톡스 캠페인 (1865): 남북 전쟁 막바지, 셰리든의 기병대는 애퍼매톡스 코트하우스 근처에서 남군 퇴로를 차단하며 로버트 E. 리 장군의 항복을 받아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전후 활동:
남북 전쟁 종전 후, 셰리든은 미국 서부의 군사 지구 사령관을 역임하며 재건 시대와 평원 인디언 전쟁에 관여했다. 1883년에는 윌리엄 테쿰세 셔먼의 뒤를 이어 미국 육군 총사령관(Commanding General of the United States Army)이 되었다. 그는 이 직책을 맡아 군 현대화에 기여하다 1888년 사망했다.
셰리든은 남북 전쟁 기간 중 북군에게 중요한 승리를 안겨준 유능한 야전 사령관으로 평가받지만, 전후 인디언 정책에 대한 그의 역할은 비판적인 시각도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