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타 섬 전투
크레타 섬 전투는 제2차 세계 대전 중 1941년 5월 20일부터 6월 1일까지 독일과 연합국(주로 영국, 호주, 뉴질랜드, 그리스) 사이에 그리스 크레타 섬을 놓고 벌어진 전투이다. 이 전투는 역사상 최초로 대규모 공수 부대가 단독으로 섬 전체를 장악하기 위해 수행된 주요 작전이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독일군은 이 작전을 '메르쿠어 작전(Operation Mercury)'이라 명명했다.
배경 1941년 4월, 독일군은 발칸 반도를 침공하여 그리스 본토를 점령했다. 이후 전략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는 크레타 섬은 양측 모두에게 다음 목표가 되었다. 연합군은 이집트, 중동, 그리고 동부 지중해 방어를 위해 크레타 섬을 사수하려 했고, 독일군은 지중해에서의 연합군 해군 및 공군 활동을 제한하고 남동부 전선의 측면 안보를 강화하기 위해 섬을 점령하고자 했다. 연합군은 이미 크레타 섬에 그리스군 잔여 병력과 그리스 본토에서 철수한 영국 연방군 병력을 배치하여 방어 준비를 갖추고 있었다.
전투 경과 1941년 5월 20일 새벽, 독일 공수부대(팔슈름예거)는 크레타 섬의 주요 비행장(말레메, 레팀노, 이라클리오)과 핵심 거점에 대한 대규모 강하 작전을 개시했다. 독일군은 연합군의 예상보다 훨씬 강력한 저항에 직면하며 초기에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많은 강하병들이 착륙 지점에서 바로 전사하거나 고립되었다. 특히 말레메 비행장에서는 치열한 공방이 벌어졌으나, 독일군은 가까스로 비행장 일부를 확보하고 후속 상륙 부대와 증원 병력을 착륙시키는 데 성공했다.
독일군의 증원이 이루어지면서 전세는 점차 독일군에게 유리해졌다. 연합군은 독일 공군의 제공권 장악과 통신 두절, 그리고 병력 및 장비의 부족으로 인해 조직적인 반격에 어려움을 겪었다. 영국 해군은 해상으로 이동하려던 독일 수송선을 저지하려 했으나, 독일 루프트바페의 공습으로 상당한 피해를 입고 해상 봉쇄에 실패했다.
결국 연합군은 섬 방어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5월 28일부터 철수 작전을 시작했다. 영국 해군은 야간에 병력을 태워 이집트로 철수시켰으나, 철수 과정에서도 독일 공군의 공격으로 큰 손실을 입었다. 6월 1일, 섬에 남아있던 연합군 병력의 대부분이 항복하면서 전투는 독일군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결과 및 영향 독일군은 크레타 섬을 점령하는 데 성공했으나, 숙련된 공수부대원들이 전체 병력의 약 25%에 달하는 큰 손실을 입었다. 이 막대한 손실로 인해 아돌프 히틀러는 이후 대규모 공수 작전의 위험성을 인지하고는 더 이상 대규모 공수 작전(예: 몰타 섬 침공 계획)을 승인하지 않게 되었다. 이는 독일군의 전략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연합군 또한 많은 병력을 잃고 섬을 내주었지만, 독일군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히면서 전략적 지연 효과를 얻었다고 평가받기도 한다. 크레타 섬은 이후 전쟁 기간 동안 독일군의 중요한 거점이 되었다. 이 전투는 공수 작전의 성공적인 실행 가능성을 보여줌과 동시에, 충분한 준비와 지원 없이는 큰 대가를 치러야 함을 증명한 사례로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