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자성의 난
이자성의 난(李自成의 亂)은 명나라 말기인 1630년대부터 1640년대 초반에 걸쳐 중국 북부를 휩쓴 농민 반란으로, 이자성(李自成)이 주도하였다. 명나라의 쇠퇴, 가혹한 세금, 흉년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발생했으며, 결국 명나라 멸망의 주요 원인이 되었다.
배경
명나라는 만력제 이후 정치적 혼란과 재정 악화에 시달렸다. 관리들의 부정부패가 만연했고, 가혹한 세금은 농민들의 생활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게다가 1620년대부터 지속된 흉년은 농민들의 불만을 극도로 고조시켰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이자성은 농민들을 규합하여 반란을 일으켰다.
전개
이자성은 1630년경 섬서성에서 반란을 시작하여 세력을 확장했다. "균전면량(均田免糧)"이라는 구호를 내걸고 토지를 균등하게 나누고 세금을 면제하겠다는 약속으로 농민들의 지지를 얻었다. 그의 군대는 명나라 관군을 여러 차례 격파하며 빠르게 성장했고, 하남성, 산서성, 하북성 등 중국 북부 대부분 지역을 장악했다.
1644년, 이자성은 서안을 점령하고 국호를 '대순(大順)'이라 칭하며 스스로 황제에 즉위했다. 이후 수도 베이징을 향해 진격했고, 명나라의 마지막 황제인 숭정제는 자금성 뒷산인 매산에서 목을 매 자결했다.
결과 및 영향
이자성의 군대는 베이징을 점령했지만, 곧 오삼계가 이끄는 명나라 군대와 청나라 연합군에 의해 패배했다. 이자성은 도주하던 중 1645년 호북성에서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자성의 난은 명나라를 멸망시키고 청나라가 중국 대륙을 지배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또한, 농민 봉기의 강력한 사례로 역사에 기록되었으며, 중국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의 난은 사회 불평등과 정치적 부패가 초래할 수 있는 결과를 보여주는 역사적 사건으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