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생
유생(儒生)은 조선 시대 성리학을 배우고 익힌 선비를 가리키는 말이다. 과거 시험을 통해 관직에 진출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으나, 모두가 관직에 나아간 것은 아니며, 향촌 사회에서 교육과 사회적 질서 유지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다. 유생들은 성리학적 이상을 실현하고자 노력하였으며, 국가의 정치, 경제, 사회 전반에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특히 조선 중기 이후 사림파의 등장과 함께 유생들의 정치적 영향력은 더욱 커졌으며, 붕당 정치의 주요한 동력으로 작용하였다. 때로는 왕권에 대한 비판과 간쟁을 통해 정치 개혁을 촉구하기도 하였고, 반면에 보수적인 성향을 보이며 사회 변혁에 저항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였다. 유생의 신분은 엄격하게 계층화되어 있지는 않았으나, 향리(鄕吏)나 일반 백성들과는 구별되는 특수한 지위를 가지고 있었다. 그들의 사회적 지위와 역할은 시대에 따라 변화하였으나, 조선 사회의 지적, 도덕적 기반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다. 조선 후기에는 유생들의 세력이 약화되었으나, 개화기까지도 사회 전반에 걸쳐 상당한 영향력을 유지하였다.